281화 : 2장 검객은 평범함을 꿈꾸고,무제(武帝)는 비상을 꿈꾼다 (3)
다음 날 아침 진무원의 손에는 두 자루의 단봉이 들려 있었다· 딱 검만 한 길이의 단봉은 진무원의 손에 착 감겨왔다·
무게와 길이 모두 완벽했다· 이 정도면 검 대용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듯싶었다· 진무원은 두 자루의 단봉을 결합했다· 홈을 맞춰 돌려 끼우자 기다란 장봉이 되었다·
진무원은 장봉을 몇 번 휘둘러 보았다·
부웅!
쇠로 만든 장봉이 낭창낭창 휘어지며 진무원의 뜻대로 움직였다· 탄성과 강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었다· 꽤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진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장봉을 분리했다· 그는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두 자루의 단봉을 집어넣고 등에 메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진무원은 현무대의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생각보다 한가했다·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고윤우와 역신위만이 앉아서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진무원이 들어서자 제일 먼저 역신위가 알은척을 했다·
“단 소협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이거 때문에····”
진무원이 단봉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고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를 새로 맞췄나 보구려·”
“예·”
“한번 볼 수 있겠소?”
진무원은 흔쾌히 고윤우에게 단봉을 건네줬다· 단봉을 살펴보던 고윤우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 대단하구려· 이렇게 손에 착 감기다니· 무게와 균형도 딱 맞고· 정말 대단한 장인이 무기를 만들어준 것 같구려·”
“그런가요?”
“이 정도의 솜씨를 가진 장인이라면 내 무기도 맡기고 싶군·”
고윤우가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방금 전까지 손질하던 자신의 낭아도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낭아도는 군데군데 이가 나가고 표면에도 거미줄 같은 실금이 잔뜩 나 있었다·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낭아도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나마도 고윤우가 관리를 잘해왔기에 이 정도로 버티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부러졌을 것이다·
진무원이 단봉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언제고 그 장인에게 고 형의 무기 손질을 부탁하겠습니다·”
“정말이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내 사례는 얼마든지 하겠소·”
고윤우가 단번에 반색했다·
새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제껏 사용해 온 낭아도가 좋았다· 오래 사용해 손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때 현무대의 입구 쪽이 시끌벅적해지며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밤새 거나하게 마셨는지 아직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현무대 소속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고윤우와 역신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구대문파와 같은 명문가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엔 현무대의 대주인 윤주천이 있었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진무원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윤주천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몇몇 인물은 낯이 익었다·
‘황보세가의 황보중걸이라고 했던가?’
그의 곁에 정윤회 남중경 소유경 등의 얼굴도 보였다· 철혈성을 접수하고 돌아올 때 만난 인물들이다· 노숙하는 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민폐만 끼친 그들이 현무대에 있었다·
공을 세워 척마대에 들겠다고 큰소리치더니 현무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이 노숙할 때보다 조금 더 살이 찌고 혈색도 좋아 보이는 것이 꽤 편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윤주천 등의 시선이 문득 고윤우와 역신위를 향했다· 그런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결코 고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여기 있었구려 두 분· 찾아도 안 보이기에 밖으로 나간 줄 알았는데·”
“그랬습니까?”
“간만에 대승을 거둬 축하주라도 한잔하려 했는데 두 분이 보이지 않아 우리끼리 마셨소·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오?”
“괜찮습니다· 마음 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고윤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힘껏 쥔 그의 주먹 위로 굵은 힘줄이 돋아 나왔다·
그들은 밤새 이곳에 있었다· 윤주천 등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에 부를 마음이 없었다는 뜻이다·
최전선에서 싸운 것은 자신들이다· 윤주천을 비롯한 이들은 안전한 후방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공은 자신들이 세운 것처럼 술을 마시며 떠들고 다니니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들은 고윤우와 역신위처럼 힘없는 문파 출신의 무인들을 철저히 배척했다·
윤주천이 고윤우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다음엔 꼭 고 형과 역 형을 부르겠소· 그때는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해 주구려·”
“그러··· 겠소·”
“하하하! 역시 호탕하시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윤주천을 보는 역신위의 표정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그들을 제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담수천을 비롯한 척마대의 무인들 그리고 강호의 명숙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가재는 게 편 그들이 윤주천 등을 제재할 이유가 없었다·
견디기 힘든 모멸감에 절로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강호에서 저들과 척을 지고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문득 윤주천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쪽은?”
“단천운이라고 합니다·”
“단천운?”
진무원의 담담한 대답에 윤주천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살짝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 경천봉?”
비록 안전한 후방에 빠져 있었다지만 귀까지 막고 있던 것은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 척마대를 구한 남자에 대한 소문은 그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윤주천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이거 강호의 신성이라고 소문이 난 단 소협이었구려· 정말 반갑소이다· 난 점창파의 윤주천이라고 합니다·”
누가 봐도 눈에 띄게 달라진 태도였다· 고윤우나 역신위를 대할 때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모습이다·
강호에서의 명성은 곧 힘이다·
비록 담수천에 묻힌 바가 없지 않았지만 진무원도 저번 전투에서 무시 못 할 명성을 쌓았다· 안전한 후방에 있던 윤주천 등은 결코 얻을 수 없는 엄청난 위명을 얻은 것이다·
누가 봐도 단천운이 차세대 강호를 이끌 선두 주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윤주천은 그에게 유난히 살갑게 구는 것이다·
그때 윤주천의 뒤에서 황보중걸이 걸어나왔다·
“이거 낯이 익다 싶더니 단 형이었구려· 이거 반갑소· 설마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이야·”
황보중걸이 실실 미소를 지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진무원을 알아봤다· 하지만 굳이 알은척을 하지 않았다· 겨우 하룻밤의 인연이었고 진무원이 공작문이라는 멸문한 문파 소속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경이 없는 진무원 따윈 그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하지만 경천봉이라는 위명으로 강호를 위진시킨 단천운은 달랐다· 그는 충분히 자신들과 어울릴 자격이 있었다·
“황보 형이었구려·”
“그때 말도 없이 단 형이 먼저 떠나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오·”
진무원을 대하는 그의 말투가 얼마나 사근사근했는지 동료인 정윤회 등의 표정이 다 붉어졌을 정도이다·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소?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눕시다·”
황보중걸이 미소를 지으며 윤주천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윤주천 등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원의 합류를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는 표정이다·
진무원이 당연히 자신들에게 올 거라 자신하는 모습이다· 황보중걸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진무원의 대답은 그들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 되겠습니다·”
“응?”
“보다시피 이들과 먼저 식사하기로 해서·”
진무원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입을 다물고 서 있는 고윤우와 역신위를 가리켰다· 그에 황보중걸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감히 저런 떨거지들 때문에 나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그는 진무원이 일부로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고윤우와 역신위는 현무대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들이다· 그런 이들 때문에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하나 그는 억지로 웃었다·
“끄응!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나 다음엔 꼭 같이합시다·”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의 얼굴엔 진무원을 향한 노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의 방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오· 술 한잔이 그리우면 언제든 찾아오시오·”
윤주천이 황보중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도 황보중걸처럼 자존심이 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이럴 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 하나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그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많은 것이 부족했다· 진무원도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그 사실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키지 않아도 자신들 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윤주천은 웃을 수 있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좋은 시간 보내시구려 단 형·”
“고맙습니다·”
진무원이 포권을 취하자 윤주천이 일행을 이끌고 갔다· 윤주천을 따라가는 무인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어떤 이는 노골적인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진무원을 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 모든 시선을 담담히 받아넘겼다·
윤주천 일행이 모두 사라지자 역신위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겠어요?”
“뭐가 말입니까?”
“저들과 함께 가지 않은 것·”
“그게 어째서 말입니까?”
“저들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들은 무척이나 배타적이어서 아무나 자신들의 무리에 들이지 않습니다·”
역신위는 진무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일 자신이 진무원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굴욕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들의 무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진무원은 가볍게 웃었다·
그런 진무원의 모습을 보면서 고윤우가 눈을 빛냈다·
‘저 남자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무시할 정도로 자신감이 있는 것인가? 하긴 그 정도의 무공을 익혔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문득 진무원의 배포와 여유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진무원은 현무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어느 한 방향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느낌·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진무원은 홀로 다른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는 무얼 보고 있는 걸까?’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담수천의 눈빛은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얼 그렇게 보는 건가요?”
만일 뒤에서 서문혜령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담수천은 언제까지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오·”
담수천이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보자 서문혜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그만 혼자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냥 그대로 놔뒀으면 절대 오지 않을 그런 아득히 먼 곳에·
다행히 담수천은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닿을 곳에·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불안함이 존재했지만 그가 있기에 그녀는 웃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오?”
“모든 것이 잘됐다고 알려주려고 왔어요·”
“그렇소?”
“이곳에 있는 모든 전력을 장악했어요·”
“고생 많이 했소·”
“사대마장한테 감사해야겠어요· 그들 덕분에 수월하게 장악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현재 운중천은 비상 상황이다· 사대마장에 의해 중원 전체와 본진이 유린당하는 형국이다· 그들에겐 이곳 부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 덕에 서문혜령은 이곳을 생각보다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이제 하늘로 비상할 일만 남았어요· 축하해요 수천·”
담수천이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별 감흥은 없었다· 서문혜령은 천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담수천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이 정도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할 뿐이니까·
서문혜령이 다가왔다· 서로의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담수천은 서문혜령을 품에 안았다·
서문혜령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강한 남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선택한 남자의 강인한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이 남자는 하늘 위의 하늘이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서문혜령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담수천이 서문혜령의 등을 어루만졌다·
문득 서문혜령이 입을 열었다·
“조만간 조부님이 이곳에 오실 거예요·”
“그렇소?”
“그분이 당신의 등에 더욱 커다란 날개를 달아줄 거예요 수천·”
문득 담수천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저 멀리 현무대의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거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