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 7장 하늘의 일각이 무너지다 (3)
적엽 진인의 죽음은 천하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영원하리라 생각됐던 아홉 하늘의 일각이 붕괴되었고 그 충격은 천하를 뒤흔들었다·
제일 먼저 무당파가 큰 타격을 입었다· 무당파는 적엽 진인의 복수를 천명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적엽 진인을 죽인 자의 정체를 전혀 몰랐다·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그의 무공이 적엽 진인을 죽일 만큼 가공하다는 것뿐·
하늘을 죽인 자 그에게 살천랑(殺天郞)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그의 등장은 북검과 창천무제의 등장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살천랑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다·
어떤 이들은 살천랑이 밀야에서 보낸 암살자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강호에 새로이 등장한 살성(殺星)이라고 했다·
적엽 진인의 죽음에 이제껏 숨을 죽이고 있던 아홉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었다· 그만큼 적엽 진인의 죽음은 충격적이었고 기존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심각한 위협이었다·
운중천뿐 아니라 강호의 모든 정보 조직이 살천랑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그 어떤 조직도 살천랑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흑월이 나서서 정보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월이 개입한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운중천에서는 살천랑을 강호 공적으로 선포했고 누구라도 살천랑을 도와주는 자가 있으면 삼족을 멸할 것이라 했다· 무당파에서 살천랑의 목에 만금의 상금을 걸었다·
그렇게 천하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혼란은 극에 달했다· 특히 부현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부현이야말로 천하 난세의 중심이었다·
부현의 중심에 서문혜령이 서 있었다·
서문혜령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살천랑? 단천운에 이어 살천랑?”
그녀의 앞에는 무당에서 날아온 서신이 놓여 있었다· 서신 안에는 실로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단천운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무당산에 나타난 살천랑이라는 자는 그녀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적엽 진인은 아홉 하늘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절대 강자· 그런 강자를 정당한 대결로 쓰러뜨렸단 말인가?”
살천랑의 정체는 서신을 보내온 서문세가의 간자도 알지 못했다· 지금 서문세가의 모든 정보망이 살천랑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큼 살천랑의 등장은 충격적이었고 서문혜령의 계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살천랑 하늘을 죽인 자· 어쩌면 그가 수천의 앞날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담수천은 착실히 기반을 만들어왔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말이다· 그 덕에 이제는 아홉 하늘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기반을 구축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살천랑의 등장은 그런 담수천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일단 살천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그가 적이라면····”
서문혜령의 눈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빛이 떠올랐다· 살천랑 하나 때문에 그간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지게 할 수는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가 급히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돌돌만 서신을 미리 준비한 전서구의 다리에 매달아 날려 보냈다· 그러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밖을 향해 말했다·
“밖에 누가 있나요?”
“아가씨·”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채화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부현과 섬서성에 와 있는 본가의 모든 인물을 소집해 줘요·”
“모두 말인가요?”
“그래요· 한 명도 빠짐없이·”
“알겠습니다 아가씨·”
채화영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이곳 부현과 섬서성에 파견 나와 있는 서문세가의 인물들을 모두 소집하다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증거였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서문혜령은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서문혜령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천 이곳엔 당신이 필요해요·”
석천(石泉)은 산서성 남쪽에 있는 조그만 현이었다· 석천은 수려한 풍경으로 무척이나 유명해서 평소 시인묵객이 많이 찾았다· 하지만 지금의 석천은 무척이나 쓸쓸했다·
전쟁의 여파 때문이었다· 밀야와 운중천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부현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까지 전장이 확대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석천 북쪽에는 꽤 큰 호수가 있었다· 평소라면 배를 띄우는 사람이 많았지만 오늘 호수에 떠 있는 것은 조그만 낚싯배 한 척에 불과했다·
낚싯배 위에는 늙은 사공이 쭈그리고 앉은 채 낚싯대를 호수에 드리우고 있었다·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한 듯 사공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살이 가득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서인지 수면은 고요했다· 호수는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고 늙은 사공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늙은 사공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졌다· 순간 늙은 사공이 눈을 번쩍 떴다·
하얀 눈썹 아래 감춰져 있던 눈에서 순간적으로 섬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평범한 사공이라곤 볼 수 없는 그런 강렬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늙은 사공의 눈빛은 다시 원래의 평범함을 되찾았다·
낚싯배가 흔들렸다·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이 일고 있었다· 사공의 시선이 파문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갔다· 순간 그의 하얀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조그만 낚싯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낚싯배의 선수에는 젊은 청년이 뒷짐을 쥐고 서 있을 뿐 노를 젓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배는 누군가 노를 젓는 것처럼 사공이 탄 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흠!”
늙은 사공의 입술을 비집고 감탄인지 탄식인지 구별하기 힘든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청년은 본신의 내력만으로 배를 움직이고 있었다· 내공이 융통무애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펼칠 수 없는 묘기였다·
늙은 사공이 안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선수에 선 청년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였다· 순간 늙은 사공의 입술이 뒤틀렸다·
늙은 사공은 한눈에 청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세상에 많은 젊은 무인이 있었지만 청년만큼 그의 기억에 각인된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만큼 청년은 강호에서 독보적인 위상과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담수천·”
그의 이름은 담수천이었다·
강호의 신성이라는 단순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남자가 바로 담수천이었다·
창천무제(蒼天武帝) 젊은 무인들 중 유일하게 절대자의 칭호를 받은 무인이었다· 그만큼 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고 압도적이었다·
늙은 사공이 노구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그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추래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절대자의 기세가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사이 담수천이 탄 배가 바로 사공이 탄 배 앞에까지 다가왔다· 그제야 담수천이 늙은 사공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후배 담수천이 창룡검제를 뵙습니다·”
창룡검제(蒼龍劍帝) 비사원이 늙은 사공의 정체였다·
아홉 하늘 중 일인이자 검으로는 적엽 진인과 쌍벽을 이룬다는 절대검호였다· 그는 은둔지향형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간 강호의 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 때문에 그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비사원이 입을 열었다·
“수천 네가 이곳엔 어인 일이더냐?”
“검제를 뵈러 왔습니다·”
“나를?”
비사원의 주름진 미간에 더욱 깊은 골이 패였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극비 중의 극비였다· 담수천이 아무리 시대를 아우르는 기린아라고 하지만 그의 거처를 찾아올 만한 이유가 없었다·
“밀야와의 전쟁에 앞장서야 할 네가 나를 찾아오다니·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더냐?”
“잘못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분명 검제를 뵈러왔습니다·”
“흠!”
비사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담수천의 말에서 왠지 모를 비릿한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해보거라· 무슨 이유로 나를 찾아왔느냐?”
“검제께 한 수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나에게? 지금 이 시국에 말이냐? 밀야와 전쟁이 한참인 이 시기에·”
“그렇습니다·”
“네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구나·”
비사원의 하얀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그의 눈빛엔 은은한 노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가 너를 밀어준 것은 밀야와의 전쟁에 최선봉에 서길 바라서였다· 그런 네가 감히 이 시기에 나에게 도전을 하겠다고 나서다니· 그렇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해서야 어찌 큰 인물이 되겠느냐?”
“딱 그 정도까지겠지요·”
“뭐가 말이냐?”
“당신들이 바라는 나의 크기가·”
“놈!”
“당신들이 정한 규격에 나를 가둬두고 싶겠지요· 그 이상 크면 자신들의 아성에 위협이 될 테니까·”
“보자 하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감히 나를 상대로 그런 망발이라니·”
후웅!
비사원의 노기가 폭발하자 호수에 바람이 일었다· 파도가 출렁이고 그들이 타고 있는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위태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담수천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분명 조소였다·
‘뭐가 아홉 하늘이란 말이냐? 인간이 어찌 하늘이라 불린단 말이냐?’
밀야와의 전쟁이 벌써 삼 년이나 이어지고 있었지만 아홉 하늘이라 불리는 자들 중 전쟁에 참여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싸우는 자가 아니었다· 그저 지시를 내리는 방관자에 불과했다·
담수천은 이제껏 참았다· 힘이 없었기에 무조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젠 상황이 변했다·
‘살천랑 그자의 등장이 변수를 만들었다·’
자신보다 먼저 아홉 하늘 중 하나를 무너뜨린 자가 등장했다· 이대로 두면 그의 명성이 자신을 능가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강호의 군림자로 오롯이 서겠다는 자신의 꿈은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살천랑이 적엽 진인을 쓰러뜨렸다면 자신은 비사원을 쓰러뜨리면 된다· 아직 시기가 이르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에겐 더욱 거대한 명성이 필요하다· 아홉 하늘에 버금가는 것이 아닌 능가할 명성이·’
담수천이 서서히 내력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후배 담수천이 창룡검제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정녕 네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감히 내 말을 무시하다니· 전쟁이 우선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저에겐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도····”
“무인과 무인의 대결입니다· 그 외 다른 이유가 무엇이 필요합니까?”
“으음!”
비사원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더 이상 대결을 회피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인 대 무인의 대결· 그런 싸움을 벌인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 아홉 하늘의 일좌를 차지하면서 더 이상 그에게 도전해 오는 사람도 없었고 그도 직접 나설 일도 없었다·
그는 명령을 내리는 일에 익숙해졌고 자신을 대신해 싸울 자를 지명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 자들은 널리고 널렸다· 담수천도 그런 자들 중 한 명이었다·
젊은 무인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초상승의 기재·
그것이 담수천에 대한 아홉 하늘의 평가였다·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도구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상당한 권한을 줘서 밀야와의 전쟁에 앞세웠다· 그런데 밀야를 향해야 할 도구가 오히려 자신을 향해 독아를 내밀었다·
비사원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감히! 감히!”
바람이 불고 호수 표면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호수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 비사원이 있었다·
그가 호수에 드리웠던 낚싯대를 거둬들였다· 손잡이를 비틀자 낚싯대 몸통에 숨어 있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룡신검(屠龍神劍)·
창룡검제 비사원의 애검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검광이 담수천의 눈을 자극했다· 하지만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에겐 성광류(聖光流)가 있었다·
세상 모든 사마(邪魔)와 극성인 무공이·
‘나는 검제를 뛰어넘어 창천으로 비상하리라·’
창룡회를 만들었던 그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그림이었다· 창룡회를 만들면서 다짐했다· 창룡이라는 이름을 그 누구도 쓰지 못하게 하겠다고·
비사원이 도룡신검으로 담수천을 겨눴다·
“덤벼라· 하늘의 무서움을 알려주마·”
“그 하늘 내가 무너뜨리지·”
담수천이 조각배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순간 그의 몸에서 찬란한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콰콰쾅!
검제와 무제가 격돌했다·
그들의 격돌에 호수가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