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 5장 혼마와 북검, 그 약연의 끝 (1)
“괴물?”
공아천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 순간에도 비명 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들의 비명에 담긴 공포와 두려움이 공기를 타고 공아천의 피부로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무슨?”
피부에 소름이 올라왔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근원적인 공포에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치고 있었고 공기 전체가 살의를 머금은 듯 피부를 아프게 자극하고 있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압박감에 공아천의 얼굴이 핼쑥하게 질렸다· 그것은 표승우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마혈이 제압되어 내공을 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누구보다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크윽!”
표승우의 입가를 따라 한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곽문정의 안색 역시 그리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위기감과 압도적인 존재감에 전신이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 괴물 같은 존재감을 가진 자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이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공포를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쾅! 쾅!
무언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석실 전체가 진동을 했다· 먼지와 돌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고 강렬한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공아천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했다·
“역시 네놈들은 간자가 분명하구나· 꼬리를 달고 오다니·”
“아니오· 우리는 모르는 일이오·”
표승우의 필사적인 변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아천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표승우의 목을 향했다·
공아천은 표승우와 곽문정의 목숨을 빼앗은 후 이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판장이었다· 자칫 연판장을 빼앗겼다가는 운중천 내부의 동료들이 위험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했다·
공아천이 표승우를 향해 검을 휘두를 때였다·
‘됐다·’
곽문정의 눈이 빛났다· 마침내 제압된 마혈을 푼 것이다· 몸이 자유를 찾자마자 그는 공아천을 막아섰다·
그는 가까스로 공아천의 검면을 손바닥으로 쳐 낼 수 있었다· 표승우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던 검이 궤도를 살짝 바꿔 빗겨 나갔다·
퍽!
검이 표승우의 머리 대신 옆의 벽에 처박혔다·
“네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도망쳐야 해요·”
“흥! 지금 네놈이 한패가 아니란 말을 하는 게냐?”
“그렇습니다·”
곽문정이 다급히 대답했다·
여기서 공아천과 다툴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쿵쿵거리는 소리는 더 커지고 있었다· 미지의 적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며 이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대를 지배하는 가공할 살의에 얼굴이 다 핼쑥해졌다·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미지의 적은 감히 네가 대항할 수 없는 존재라고·
공아천이 잠시 곽문정과 표승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의 안색은 자신만큼이나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큿!”
결국 공아천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서둘러 표승우의 마혈을 풀어줬다·
“어서 나갑시다·”
겨우 자유를 찾은 표승우가 화를 낼 겨를도 없이 말했다· 그 역시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쪽일세!”
공아천이 벽 한쪽을 문지르자 숨겨져 있던 비밀 문이 드러났다· 그들은 서둘러 비밀 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쾅!
갑자기 굉음과 함께 벽 한쪽이 터져 나가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흐!”
그의 음소에 실내의 공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마치 살의의 집약체처럼 어마어마한 살기와 광기를 공기 중에 흩뿌리는 회색의 거한·
화강암처럼 장대한 체구와 봉두난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광기 어린 붉은 눈동자를 본 순간 세 사람의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저자가 누구기에?’
‘괴물?’
거한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할 만큼·
거한의 시선이 표승우와 공아천을 향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온몸이 저릿저릿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기혈이 미친 듯이 들끓어 올라 통제가 되지 않았다·
공아천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구시오?”
“너희는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다·”
괴인의 광오한 말에 공아천이 입을 꾹 다물었다· 괴인은 능히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기운은 아홉 하늘에 비견될 정도다· 이자가 대체 누구기에?’
공아천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 때 괴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표승우냐?”
표승우는 입술을 깨물며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괴인의 시선은 귀신같이 그를 향했다·
“네놈이구나·”
괴인의 지목에 표승우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괴인의 시선이 공아천을 향했다·
“그럼 네놈이 운중천 내부의 배신자겠구나·”
“큭!”
괴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 순간 곽문정이 표승우와 공아천의 뒷덜미를 잡고 몸을 날렸다· 그 직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깊은 구덩이가 패였다· 예고도 없이 괴인이 강기를 날린 것이다·
“헉!”
표승우가 숨넘어가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괴인의 공격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의 등장에 표승우와 공아천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늘 이 자리가 그들의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투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곽문정은 달랐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괴인을 노려보았다·
분명 상대의 기운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지금 자신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극강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 진무원도 그랬다· 그는 항상 최악의 상황에 있었지만 한 번도 자신을 포기하거나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지 않았다·
‘싸워야 한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분명 기회가 올 것이다·’
곽문정은 무기력하게 괴인을 바라보는 공아천의 손에서 자신의 애검 청련을 빼앗았다· 그래도 공아천은 반응하지 않았다·
무공의 문제가 아니었다· 순수 무공으로만 따지면 검도각의 부각주인 공아천의 무공이 곽문정보다 훨씬 월등했다· 하지만 정신력은 그렇지 않았다·
곽문정에겐 결코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를 포기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버티면 분명 형이 올 거야·’
괴인의 살벌한 기세로 보아 단 일 초도 못 버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살장에 끌려간 소처럼 가만히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호!”
처음으로 괴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자신을 만나고도 투지가 꺾이지 않은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대는 무공의 격차를 느끼자마자 스스로를 포기하고 절망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소년은 자신의 가공할 존재감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투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큿! 개중에 꼬마가 제일 낫구나· 나머지는 재활용도 못 할 쓰레기들에 불과해·”
괴인의 조소에도 표승우와 공아천은 감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마음으로는 백 번 천 번 그러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괴인의 기백에 완전히 짓눌려 있었다·
괴인이 저벅 소리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만큼 공아천과 표승우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가장 어린 곽문정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어깨에도 잔경련이 쉴 새 없이 일어났지만 그는 용케도 버티고 서서 괴인을 노려보았다·
“대단하구나 꼬마야· 나의 혼원염마기에도 그 정도로 버티다니· 너는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너의 살날이 오늘까지라는 것이 안타깝구나·”
결국은 살려두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곽문정은 다른 이유로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혼원염마기? 당신은 혼마구나·”
언젠가 진무원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혼원염마기를 사용하는 회색의 거한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거한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는 바로 혼마 태무강이었다·
그가 삼 년의 시공을 격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큿! 나를 알아보다니 제법이구나· 나를 아는 사람들 중 살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말이야·”
태무강이 곽문정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곽문정이 느끼는 압박감이 배로 커졌다·
‘혼마가 나타나다니· 그 상자 안에 든 물건이 대체 무엇이기에?’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었다· 자신이 과연 저 강대한 혼마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다·
“나를 알아본 대가로 깨끗한 죽음을 내리마·”
태무강이 곽문정을 향해 장난처럼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혼탁한 기운이 일어나 곽문정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왔다·
곽문정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쩌엉!
“컥!”
청명한 쇳소리와 답답한 신음이 동시에 터져 나오며 곽문정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대의 장난 같은 일수에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제길!’
곽문정이 벽에 기대어 겨우 버텼다·
전신이 해체되는 것 같은 충격에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큿! 제법이구나·”
태무강이 웃으며 다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해일 같은 기운이 다시 몰려왔다· 좀 전보다 배는 더 강력한 기운이었다·
‘이건 막을 수 없다·’
곽문정이 이를 악물었다·
피할 공간도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해일 같은 회색의 기운을 노려보았다·
회색의 기운이 격중하기 직전이었다·
콰우우!
갑자기 누군가 곽문정과 태무강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회색의 기운이 사라졌다·
“형!”
곽문정의 눈에 절로 눈물이 고였다·
그의 앞을 막아선 남자의 뒷모습은 그에게 너무나 낯익은 것이었다· 그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태무강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남들의 눈에는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그의 일수에는 혼원염마기가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대의 기운이· 그런 혼원염마기를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소했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척추를 따라 근육이 경직됐다· 예전에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그랬는지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분 나쁜 느낌에 태무강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누구냐?”
하지만 진무원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곽문정을 바라봤다·
“그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거라·”
“흐흐! 소용없을 것이다· 이곳은 이미 회혼랑들이 장악하고 있을 테니까·”
회혼랑은 태무강의 광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수족들이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태무강이 회혼랑을 대동한 것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가거라·”
“네!”
곽문정은 한 점의 의심도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아직 넋이 빠져 있는 표승우와 공아천을 데리고 석실을 빠져나갔다·
공아천이 곁눈질로 진무원을 살폈다·
‘저 남자가 대체 누구기에?’
그가 나타난 순간부터 태무강이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듯 광포한 존재를 긴장하게 만드는 남자라니·
그 정도의 무력을 가진 남자라면 기억에 남아 있을 만한데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모두 석실을 나가고 난 뒤에야 진무원이 태무강을 돌아봤다· 태무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 이렇듯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자가 있다니·
분노는 혼원염마기를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발산됐다· 방금 전 장난처럼 곽문정 등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칠고 포악한 기운이었다·
“크흐흐! 나를 앞에 두고 이리 오만방자하다니· 그들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회혼랑은 결코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거든·”
“회혼랑은 결코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네놈은 회혼랑을 모르는구나· 회혼랑은····”
“회혼랑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
“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태무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새 회혼랑이 모두 목숨을 잃었단 말인가? 그것도 내 감각을 감쪽같이 속인 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자신이 오랜만에 깨어나 감각이 무뎌져 있다 할지라도·
“네놈··· 누구냐?”
“오랜만입니다· 역시 살아 있었군요·”
“나를 아느냐?”
태무강이 진무원을 자세히 바라봤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데 그의 기억 속 어디에도 저런 얼굴은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저 비슷한 분위기는 기억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쪼개지고 옆구리와 복부에 큰 자상을 입었던 그날· 그때도 눈앞의 남자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던 남자와 싸웠었다·
그날 입은 상처 때문에 이 년이나 수면을 취하며 육신의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또다시 일 년을 꼬박 은둔해야 했다·
“너는?”
그 순간 진무원의 얼굴이 조금씩 변해갔다· 단천운의 얼굴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태무강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진무원·”
그의 노성이 폭풍이 되어 석실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