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 3장 불꽃은 찬란함으로 부나방을 유혹한다 (2)
객잔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때아닌 횡액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고 객잔의 일부가 무너져 편히 쉴 수 없게 됐다·
객잔의 주인과 점소이들이 수습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생활의 터전이 무너진 그들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곽문정이 그들을 도와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금전적으로는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원이 상자를 바라보았다· 상자는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바깥쪽 상자는 반쯤 부서져 있었지만 안쪽에 있는 상자는 폭발 속에서도 건재했다·
폭발 속에서도 안전한 상자라면 기물이라 불릴 만했다· 그리고 이 정도 상자에 보관할 정도의 물건이라면 분명 중요한 것이 틀림없었다·
진무원은 잠시 상자를 열어볼까 고민했다· 벽력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괴인이 노릴 정도의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물건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었다· 따라서 열어볼 사람도 자신이 아니었다·
진무원은 의뢰인의 시신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표승우에게 다가갔다· 넋을 놓고 앉아 있던 표승우는 진무원이 지척에 도착해서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진무원이 표승우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이건?”
“습격자가 훔쳐 갔던 물건입니다·”
“아!”
표승우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 들었다·
“이걸 왜?”
“의뢰인의 물건이잖습니까?”
“음!”
표승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의뢰인은 이 상자를 꼭 부현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의뢰인이 만나기로 한 사람은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타날 거라고 했습니다·”
표승우가 이를 악물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록 의뢰인은 무사히 지키지 못했지만 그가 소중히 간직했던 물건을 무사히 전달해 주는 것· 아직 보표로서 그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내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진무원은 곽문정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얼굴은 철갑을 씌운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결국 괴인의 정체는 물론이고 배후 그 어느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괴인의 정체를 증명해 줄 만한 물건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어디 소속일까? 밀야 그도 아니면 운중천·’
진무원 흘깃 표승우를 바라보았다· 표승우는 조그만 상자를 품에 꼭 껴안고 있었다·
진무원과 곽문정은 날이 밝자마자 객잔을 떠났다·
“형 정말 함께 가도 괜찮겠어요?”
“괜찮다·”
곽문정이 진무원의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그에 진무원의 시선이 곽문정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말을 타고 그들을 따라오는 표승우의 모습이 보였다·
객잔의 일을 어느 정도 수습하자 표승우는 진무원과 곽문정을 따라 나섰다· 그 사실이 못내 부담스러운 곽문정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표승우의 주위에는 항상 문제가 일어난다· 예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도 진무원이 그와의 동행을 허락한 것이 못내 의아했다·
진무원이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래도····”
“괜찮을 거다·”
“알았어요·”
곽문정이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그들이 이용하는 도로는 일반적인 관도가 아니었다· 세인들이 흔히 말하는 뒷길이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조그만 소로를 이용해 우회하고 있었다·
표승우와 곽문정은 모두 보표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조그만 소로까지 모조리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훤히 노출된 관도보다는 훨씬 안전했다· 비록 제대로 된 숙소나 인가는 없겠지만 세 사람 모두 노숙이라면 이골이 난 사람들이라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동하는 내내 표승우는 상자 안의 내용물을 궁금해했다· 몇 번이나 열어볼까 했지만 끝내 열지는 않았다· 의뢰인을 지키지 못한 보표가 의뢰인의 물건까지 열어본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진무원의 뒤를 따르는 표승우의 속내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떤 놈들일까?’
그가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할 정도로 폭귀의 무공은 괴이했다· 특히 괴인이 사용한 벽력탄은 그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엎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벽력탄은 극히 불안정한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자유롭게 휴대하고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괴인은 벽력탄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그 말은 곧 기존 벽력탄의 문제점을 개선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개인이 벽력탄을 개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놈은 거대 단체에 소속된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괴인의 배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큰일에 휩쓸린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표승우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건 사고에 엮였지만 이렇게 큰일에 엮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표승우의 시선이 문득 진무원을 향했다·
그가 무방비로 당하고 있을 때 진무원은 홀로 괴인을 추적해 상자를 되찾아왔다· 곽문정이 형이라고 소개할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도대체 저 남자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의문은 커져갔지만 이제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부현에 도착할 때까지는 반드시 함께해야 했다· 그래야만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진무원과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커다란 방 안 중년의 남자가 누런 종이 책자를 조용히 넘기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눈을 반개한 채 오직 종이 책자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중년의 남자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중년 남자의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중년 남자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흠!”
“총관님 저 마원입니다·”
문밖에서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중년 남자가 몸을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한쪽 소매가 바람에 펄럭였다·
뜻밖에도 중년 남자는 외팔이였다· 한쪽 팔이 어깨 어림부터 잘려 나가서 허전했다·
그가 문밖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게·”
곧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한중에서 급보입니다·”
“급보?”
“예!”
마원이 품에서 붉은 봉투를 꺼내 중년 남자에게 바쳤다· 중년 남자는 급히 봉투를 찢고 안에 담긴 서신을 꺼내 읽었다·
서신을 끝까지 읽은 중년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폭귀가 자폭을 했다고?”
비록 무공은 떨어지지만 경공술과 화기를 이용하는 능력만큼은 발군이라 할 수 있는 폭귀였다· 그런 그가 자폭을 했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났다는 뜻이었다·
“표승우라는 보표가 그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었나? 내가 그의 능력을 잘못 판단한 것인가?”
중년 남자가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면밀한 분석 끝에 폭귀를 투입했다· 보표인 표승우의 능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감안했다· 백 번을 양보해도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그런데도 작전이 실패했다는 것은 표승우의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나거나 예상치를 뛰어넘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는 것을 뜻했다·
“재미없게 일이 진행되는군· 표승우란 보표는 지금 어디쯤 있나?”
“한중을 떠나 부현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따라잡기에는 이미 늦었군·”
“어떻게 할까요? 추적조를 보낼까요?”
“아니야· 차라리 부현에서 놈을 기다리는 게 낫겠어·”
“부현에서 말입니까?”
마원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부현은 밀야와 운중천의 전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만큼 변수도 다양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놈은 연판장을 가지고 있다· 분명 연판장을 원하는 자들이 접촉할 것이다· 그때를 노린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움직일 만한 전력이 마땅치 않은데·”
“혼마를 움직이도록·”
“헉!”
순간 마원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만큼 중년 남자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더 이상 어떤 변수도 용납하지 않겠다· 혼마가 도착할 때까지 놈의 행적을 추적하도록·”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원이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중년 남자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만큼 단호했다·
중년 남자의 이름은 관대승·
운중천의 총관으로 오랜 세월을 헌신해 온 남자였다·
삼 년 전 뜻밖의 사태에 한쪽 팔을 잃고 오랜 세월을 칩거해 왔던 그가 운중천의 총관으로 다시 복귀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육신의 상처가 낫는 데는 일 년이면 충분했다· 문제는 육신의 상처보다 정신이 입은 상처였다·
당시 그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되어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 어떤 명의도 정신의 상처는 치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관대승은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로 정신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운중천의 총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
그가 없는 동안 세상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운중천과 밀야의 전쟁이 예상외로 장기화되면서 각종 변수가 돌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변수가 바로 연판장이었다· 언제부턴가 운중천의 행사에 반대하는 자들이 내부에 생겨났고 그들끼리 연판장을 돌리며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적은 매우 은밀했다· 운중천에서 그 사실을 파악한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관대승이 운중천의 총관으로 전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관대승은 모든 조직을 총동원해 내부에 불만을 갖고 있는 자들을 추적했다·
표승우를 보표로 고용한 거상의 정체도 그 과정에서 드러났다· 거상의 진정한 정체는 운중천의 내당 이 조장이었다· 운중천의 핵심 무인 중 한 명이 연판장을 돌렸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었다·
관대승이 추적해 오자 이 조장은 위기감을 느끼고 운중천을 빠져나갔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거상으로 위장하고 표승우에게 일신의 보호를 의뢰했다·
이 조장이 가지고 있는 연판장만 확보한다면 내부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을 색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폭귀를 파견했는데 오히려 일이 꼬이고 말았다·
관대승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나에게 공백만 없었더라면 이런 일들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의 시선이 허전한 어깨로 향했다· 어깨를 자른 자에 대한 분노가 그의 이성을 잠식해갔다·
살기로 범벅이 된 관대승의 눈을 보며 마원이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