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 8장 지나가는 비는 피할 수 있어도 폭풍우는 피할 수 없다 (3)
당문의 수뇌부가 급히 소집되었다·
넓은 방 안에는 지대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고 수뇌부들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던 당관호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를 말해보게나·”
“예! 가주님·”
모두를 대표해 당철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잠시 수뇌부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광원의 검문소를 지키던 무인들이 어제 몰살을 당했습니다· 청성 아미 당문 등 삼파에서 파견한 무인 백여 명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죽었습니다·”
“으음!”
“흉수들은 삼파의 무인은 물론이고 검문소를 통과하려고 기다리던 상인들과 백성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런····”
“그 때문에 저희의 상황 파악이 늦었습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현재 저희는 흉수의 정체는 물론이고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당철문의 말에 수뇌부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당철문은 그들의 소유가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현재 아미파와 청성파에 전서구를 띄운 상황입니다· 아미파에서는 회신이 왔는데 청성파에서는 아직 회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쩌면 청성파도 혈겁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일단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아이들 몇 명을 보냈는데 저녁이나 돼야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으음! 그러니까 저녁까지는 눈과 귀가 가려진 거나 다름없단 뜻이군·”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정보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철문의 대답에 수뇌부의 표정이 참담하게 변했다·
“흉수의 정체는 모르지만 결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천성에 들어온 것은 아닐 겁니다·”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라· 어쩌면 당문도 그들의 목표 중 하나일지 모르겠군·”
“그래서 아녀자들과 아이들은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고 경계도 두 배로 강화시켰습니다·”
“으음!”
다른 세가들과 달리 당가타에는 방벽이 되어줄 만한 담장이 없다· 언뜻 보면 무방비 상태인 것 같지만 그것은 당문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당가타에서 사는 당문의 사람들은 모두 암기의 고수였다· 또 어떤 이들은 독을 귀신같이 사용했다· 당 씨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 모두가 당가타의 벽이었고 감시인이었다·
현재 당문의 무인들은 암기와 독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만일 누군가 허락 없이 당문으로 들어온다면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거나 한 줌의 혈수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당관호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적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구나·”
“적들이 누구든 감히 당가타를 침입하지는 못할 겁니다·”
수뇌부 중 가장 호전적인 성향을 가진 당상문이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했다·
당상문은 한 번에 백여 개의 암기를 발출할 수 있는데다가 독에도 무척 조예가 깊었다· 뿐만 아니라 당문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커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앞에 섰다·
당상문의 호언장담에 수뇌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했다· 당문의 역사가 수백 년이 넘었지만 단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철옹성을 자랑했다·
그들의 자신감에도 이유가 있었지만 당관호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밀야일 확률이 높다· 밀야를 제외한 그 어떤 문파도 감히 사천성에서 혈겁을 자행할 이유가 없다·’
사천성은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지형을 갖고 있었다· 사천성으로 들어오는 관도만 틀어막으면 그 어떤 외세도 쉽게 침입할 수 없는데다가 대지가 넓기 비옥해 먹을 것이 풍부했다· 오죽했으면 유비가 이곳에 촉나라를 세우고 세력을 키웠을까·
반대로 다른 성들과 단절되어 있기에 외부로 진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사천성에서 태동한 문파들은 외부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보다는 내부의 안정을 택했다·
당문 청성파 아미파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세 문파는 외부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대신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했다· 세 문파가 확고히 자리를 잡은 이후 외부의 그 어떤 문파도 사천성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세 문파는 때로는 서로를 질시하거나 견제했지만 외부의 적이 출현했을 때만큼은 하나로 똘똘 뭉쳐 행동했다· 외부의 적에 맞설 때 그들은 더할 수 없이 잔인했다·
그 때문에 외부의 문파들은 쉬이 사천성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운중천에서도 사천성 안에 지부를 따로 만들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사천 무림이었다· 사천 무림은 사천성의 폐쇄성을 의미하는 단어였고 또한 그들만의 생태계를 상징했다·
사천 무림의 폐쇄성은 안전을 보장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사천 무인들에게서 긴장감과 위기감을 결여되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정말 놈들이 밀야라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 것이다· 어쩌면 당문 최대의 위기가 닥쳐온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당관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일생일대의 위기가 다가왔음을 직감했지만 그에겐 사천 무림의 맹주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당문이 적이 두려워 피하면 사천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신뢰를 잃은 무가의 최후가 어떤지 당관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문득 당관호의 시선이 곁에 앉아 있는 당미려에게 향했다· 당미려의 표정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비록 북천문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녀의 핏속에는 당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문의 위기 앞에 그녀 역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려야·”
“가주님·”
“너는 나가도 된다· 공식적으로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니까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에요 가주님· 전 끝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누가 뭐래도 제 마음은 당문과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으음!”
당미려의 말에 수뇌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당문의 여인들이 오히려 당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뇌부들의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갑자기 밖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소리 때문이었다·
“누구냐?”
“침입자다· 컥!”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비명 소리가 한데 섞여 울려 퍼졌다·
수뇌부의 표정이 싹 변했다·
“습격?”
“정말로 당문을 노렸단 말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수뇌부들이 급히 밖으로 나갔다·
당가타 곳곳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화재가 일어난 것이 계획적인 방화였다· 많은 이가 불을 끄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혼돈을 이용해 당가타 중심을 향해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를 풍기는 무인들의 선두에는 남천명이 있었다· 그가 염마대를 이끌고 당문을 습격한 것이다·
“놈들을 막아라·”
“암기를 던져라·”
당문의 무인들이 그들을 막기 위해 암기를 날렸다· 하지만 그들의 암기는 염마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염마대는 십여 명씩 뭉쳐 원진을 이뤘는데 그들의 주위에는 은은한 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당문의 무인들이 날린 암기는 은은한 막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호신강기인가?”
당관호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언뜻 봐도 당문에 난입한 염마대의 수만 이백여 명이 넘는다·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다면 절대의 반열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고수가 이백 명이나 있다면 당문은 멸문은 기정사실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당관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개개인이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는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 모종의 특수한 심법을 익히고 서로의 내력을 감응해 증폭시켜 호신강기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 분명했다·”
즉 십여 명의 내력을 합쳐 인위적인 호신강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진짜 호신강기와 위력 면에서는 비할 수 없겠지만 그 정도라도 당문의 암기를 막는 덴 별문제가 없었다·
당문의 무인들이 던진 암기는 인위적인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독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적들은 호신강기의 보호를 받으며 당문의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으아악!”
“컥!”
거리에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가득 찼다· 아수라 지옥도가 당가타에 열리고 있었다·
“놈! 멈추지 못하겠느냐?”
당관호가 원진을 이룬 채 당문의 무인들을 도륙하는 염마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소매에서 은색의 기류가 뻗어 나가 호신강기를 강타했다·
콰앙!
순간 원진을 이룬 염마대의 진용이 크게 흔들리더니 그토록 강력해 보이던 호신강기가 깨졌다· 만독제라고 불리는 당관호의 일격이었다· 진짜 호신강기도 아니고 인위적인 호신강기가 그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크윽!”
푸쉬쉬!
호신강기가 깨지고 그들의 옷에서 연기가 치솟아오르며 녹아내렸다·
“크윽! 무슨····”
염마대가 급히 옷을 벗어 던졌다· 하지만 연기는 꺼지지 않고 그들의 몸을 녹였다·
은마사(隱魔沙)·
당관호가 발출한 내력에 섞여 있는 금용암기였다· 당문의 비전으로 만든 은마사는 인체에 들러붙게 되면 살을 녹이기 시작한다· 일단 은마사가 들러붙으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 은마사가 들러붙은 부위를 통째로 잘라내기 전에는 말이다·
“으아악!”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은마사를 뒤집어쓴 십여 명의 염마대가 처절한 비명성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그 끔찍한 모습에 잠시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졌을 정도였다·
“큿! 역시 만독제라는 건가? 허명은 아니었군·”
남천명이 어슬렁거리며 당관호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청성파의 장문인인 광무진인에게도 이 정도의 위압감과 살벌한 분위기를 느끼진 못했다· 광무진인이 우물 안의 개구리라면 당관호는 독이 잔뜩 오른 독사였다· 그가 지닌 독물은 치명적이었다· 남천명과 같은 절대고수에게도 말이다·
남천명의 등장에 당관호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당신이 이들의 수괴군· 대체 무슨 이유로 당문을 습격한 것이냐?”
“그 이유는 광무진인에게 듣는 게 좋겠군·”
“광무진인?”
“지금쯤 저승에서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광무진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남천명의 말은 곧 청성파가 혈겁을 당했음을 뜻했다· 그리고 이들이 청성파에서 혈겁을 일으키고도 무사할 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관호는 당문이 사천성에 자리를 잡은 이래 최대의 위기가 닥쳐왔음을 직감했다·
“후환이 두렵지 않다면 정체를 밝혀라·”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텐데? 뭐 그래도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우린 밀야에서 나왔어· 됐나?”
“으음!”
당관호의 입술을 비집고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상대의 입으로 듣자 더욱 충격적이었다·
‘밀야가 정말 사천 무림을 노리는 것인가?’
그가 이를 악물었다·
“오늘 이 자리가 네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당가는 결코 약하지 않다· 그 사실을 알려주마·”
“그렇게 나와야지·
남천명이 웃었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다· 고동이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는 기분이었다· 이런 흥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디 당문의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맛 좀 볼까?”
남천명이 당관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신호였다·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전투가 다시 벌어졌다· 염마대는 예의 호신강기를 펼치며 당문의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당문도 수뇌부가 전투에 참여하며 팽팽한 싸움이 벌어졌다·
츠츠츠!
당관호의 주위로 은마사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남천명의 전신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뇌성벽력음이 터져 나왔다·
당미려는 그 광경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당관호의 몸에서 발출된 은마사가 남천명의 전신을 뒤덮었다· 하지만 은마사가 도달했을 때 남천명은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바람의 속삭임을 듣는 자 바람만큼 빠를지니·
남천명이 딱 그랬다·
그의 몸은 바람보다 빠르게 당관호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쿠콰콰!
그가 일으킨 소용돌이가 당관호를 덮쳐갔다·
두 사람의 격돌에 당가타가 초토화되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팔을 잘린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젊은 무인은 그녀의 사촌 형제였고 목을 잡고 꺽꺽거리다 숨이 끊어진 중년의 무인은 그녀가 아저씨라고 부르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혈족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안 돼·”
당미려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