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 7장 혈풍(血風)은 불청객과 함께 찾아온다 (2)
사천성에 들어오면서 진무원은 마차를 처분하고 걷기 시작했다· 어린 유건엽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무원은 유건엽에게 신발을 버리라고 말했고 유건엽은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진무원도 신발을 벗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맨발로 길을 걸었다· 뾰족한 돌부리가 발바닥을 찔렀다·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피부가 베어졌다· 쓰리고 아팠다· 그래도 유건엽은 우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진무원도 그런 유건엽을 달래주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앞을 보고 걸어갈 뿐이었다· 유건엽은 진무원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걸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궜다·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가 발바닥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유건엽의 전신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고 얼굴과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힘들단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걷자 유건엽은 녹초가 되었다· 그들의 강행군은 해가 질 무렵에야 끝났다·
진무원은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불을 피웠다· 유건엽은 간단한 건량으로 식사를 하자마자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피곤했겠지·”
진무원은 유건엽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소를 비롯한 탕마군과 함께하면서 유건엽의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긍정적인 것이란 사실도·
진무원은 유건엽의 맨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온통 흙투성이에도 상처가 가득했지만 진무원은 개의치 않고 열심히 그의 발을 주물렀다·
“발이야말로 인체의 모든 장기가 담겨 있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지· 특히 용천혈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혈도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무인은 용천혈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진무원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무공이 깊어질수록 용천혈이 매우 중요한 곳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인은 내공을 쌓기 위해 운기를 한다· 깊이 호흡해서 정순한 기운을 쌓는 일련의 작업을 최소 몇 년 이상 해야만 내공이란 기운이 쌓인다·”
들이는 시간은 엄청난데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그야말로 미미하다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명문과 그렇지 못한 문파의 차이가 갈린다·
명문이라 불리는 문파에는 효율적으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심법이 존재한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몸에 쌓을 수 있는 내공의 양이 월등한 것이다·
반대로 명문이지 못한 문파에는 제대로 된 내공심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다 하더라도 비효율적이라서 상대적으로 더디게 내공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심법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과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치열한 강호에서 그 정도로 오랜 세월 문파가 유지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렇게 명문과 그렇지 못한 문파의 심법은 효율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호흡을 통해 축기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진무원이 익힌 그림자 내공 또한 기본적인 원리는 같았다· 그림자 내공은 천고의 심법이지만 익히기가 극히 까다로워서 어지간한 기재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림자 내공이 깊어질수록 진무원은 인체와 혈도에 깊이 이해를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용천혈을 이용해서도 내공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히 천지간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인간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호흡한다· 그렇게 쌓은 것이 내공이고 인간을 틀에서 벗어나게 한다·
대지에도 기운은 존재한다· 나무를 자라게 하고 풀을 피게 하며 곡식을 영글게 만드는 따스한 기운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진무원은 그 이유가 인간 스스로가 가능성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인간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신었고 그 결과 대지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용천혈은 그 기능을 잃었고 서서히 퇴화되었다· 아울러 대지의 기운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또한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진무원은 대지의 기운 즉 지기(地氣)를 받아들이고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의극(一意極)이면 만의극(萬意極)이라·
하나의 의지와 뜻이 궁극에 달하면 만 가지 의지에도 통하게 된다·
지금 진무원이 그랬다· 그림자 내공이 궁극에 달하자 다른 궁극으로 통하는 방법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건엽의 용천혈을 열어야 한다·”
용천혈을 타공하면 자연스럽게 지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기는 순후하고 안정적이다· 인간의 심성 또한 그 영향을 받는다· 유건엽은 천성적으로 강한 살기를 갖고 태어났다· 지기라면 유건엽의 살기를 제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살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살기를 제어할 수 있다면 오히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무원은 정성을 다해 유건엽의 발을 주물렀다· 내공을 이용해 유건엽의 용천혈을 자극했다·
일련의 과정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내공이 엄청나게 소모되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무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건엽을 위한 무공을 궁구하면서 얻는 것이 더 많았다·
아무런 기초도 없는 유건엽을 가르치려다 보니 그 역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호흡법 걷는 법 보는 법 듣는 법 운신하는 법·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진무원은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시 점검하고 원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놓친 것 소홀히 한 것까지 보게 되었다·
유건엽을 위한 무공을 창안하는 과정은 실은 그를 위한 것이었다· 진무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무원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유건엽의 발에서 손을 뗐다· 유건엽에게 모포를 덮어주고 진무원은 심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곳에 떠 있는 한 자루의 검·
진무원은 오늘도 검에게 말을 걸었다·
“설화야·”
맨발로 걸은 지 보름째 되는 날 진무원과 유건엽은 사천의 서부고원 지대에 도착했다·
“헉헉!”
유건엽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펼쳐진 산들의 방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유건엽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됐다·
“여기가····”
“우리의 목적지다· 올라가자·”
“예!”
유건엽이 다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그의 피부는 새까맣게 탔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박였다· 여리기만 하던 두 다리에도 근육이 조금씩 붙었다· 하지만 여전히 걷는 것은 힘들었다· 걷는 것이 익숙해지자 진무원이 이상한 호흡을 시켰기 때문이다·
발바닥을 통해 지기(地氣)를 느끼고 그 기운을 몸 안에 쌓는 호흡법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호흡법과는 상리를 달리하는 기궤한 호흡법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유건엽은 이를 악물고 진무원의 가르침을 행하려 노력했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자극을 준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랬다·
진무원은 유건엽에게 제자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전인(傳人)이라고 생각했다· 유건엽은 사부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진무원을 유일한 스승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유대감은 강해졌다·
두 사람이 북천문에 도착한 것은 산을 오른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경공술을 펼쳐서 유건엽을 안고 올 수도 있었지만 진무원은 고집스럽게 유건엽이 홀로 오르길 원했다· 그리고 유건엽은 진무원의 기대에 부응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기어이 산을 혼자의 힘으로 올랐다·
산 정상의 분지에 도착한 순간 유건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지 안에 펼쳐진 북천문의 위용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곳이?”
“북천문이다·”
유건엽이 멍하니 북천문을 바라봤다·
거대한 전각도 없고 높다란 성벽도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완고하면서도 단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북··· 천문·”
“네가 이제부터 머물 곳이다·”
진무원이 유건엽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걸음을 옮겼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유건엽이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쿵!
북천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신발을 신지 않았기에 유건엽이 느끼는 진동은 더욱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챠핫!”
돌이 깔린 연무장에서 수백 명의 무인이 연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진각으로 바닥을 구를 때마다 먼지가 풀썩 일어나며 대지가 진동했다·
수많은 무인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강렬한 일권에 대기가 일렁이고 바닥을 밟는 진각이 천둥처럼 고막을 자극했다· 땀방울이 허공으로 튀고 돌로 만든 바닥이 움푹 파였다·
진무원은 연무를 하는 무인들 사이를 걸었다· 진무원의 등장에도 무인들은 연무를 멈추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반갑다는 듯이 눈인사를 해왔다· 진무원은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다·
진무원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금방 수뇌부에게도 알려졌다· 제일 먼저 하진월이 달려 나왔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철혈성 일은 잘 처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군사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
“문주님이 제혁심을 제압하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하책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문주님 덕분입니다·”
진무원을 진정한 주군으로 모시기로 한 그날부터 하진월은 단 한 번도 하대를 하지 않고 극진히 공대를 했다· 처음에는 그런 하진월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삼 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진무원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상태였다·
문득 하진월의 시선이 유건엽에게 향했다·
“누굽니까?”
“사정이 있어 데려왔습니다·”
“제자입니까?”
“일단은 가르쳐 볼 생각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도 마침 제자를 받았는데 좋은 인연이 되겠군요·”
“누구?”
“전에 말한 그 아이입니다·”
“아 이름이 한선우라고 했던가요? 분명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라고 했지요?”
“맞습니다·”
“잘됐군요·”
하진월이 미소를 지으며 반대편 방향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한선우가 급히 다가왔다·
“인사드리거라· 북천문의 문주님이시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한선우라고 합니다·”
“반갑구나· 앞으로 잘 부탁한다 소군사·”
진무원의 인사에 한선우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진무원이 곁에 있는 유건엽을 소개시켰다·
“이 아이는 유건엽이라고 한다· 첫날이라 모든 것이 낯설 테니 네가 데리고 다니면서 북천문에 대해 알려주겠니?”
“네 물론이에요!”
한선우가 씩씩한 대답과 함께 유건엽의 손을 잡았다·
“가자· 형이 북천문을 안내해 줄게·”
유건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선우를 따랐다·
진무원과 하진월은 따스한 눈빛으로 잠시 두 소년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소년의 모습이 사라지자 진무원이 하진월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회의장에 모여 있습니다· 모두가 문주님이 돌아오시기만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예·”
진무원과 하진월은 곧장 회의장으로 향했다·
연무장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회의장 안에는 소무상 마도광 경무생 곽문정 황철 당기문 등이 이미 자리를 잡고 진무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무원이 들어서자 그들은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주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그들의 환대에 진무원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철혈성을 무사히 복속시켰다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문주님·”
“여러분 덕분입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제야 사람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진무원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감회가 떠올라 있었다·
그야말로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북천문(北天門)이라는 이름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