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 6장 때로는 예상치 못하게 발목을 잡힌다 (2)
척천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와 같은 수준에 이른 고수는 주변의 상황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있다면 그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가 감각을 자극한다거나 주변의 상황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변해야 한다·
분명 무언가 그의 신경을 불길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불안한 건가? 이 내가?”
척천경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무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중도를 뽑아 자신의 전면을 가렸다·
따앙!
순간 중도에서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척천경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눈앞에서 부스러져 날리는 돌 부스러기· 누군가 그를 향해 돌멩이를 날린 것이다·
“크윽!”
“헉!”
그의 양쪽 옆에 있던 군마대의 무인들이 말에서 추락해 신음을 흘렸다· 그들의 어깨와 복부에는 예의 돌멩이가 깊이 박혀 있었다·
“웬 놈이냐?”
척천경이 노성을 터뜨리며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중도를 겨눴다·
후웅!
그 순간 척천경은 강렬한 기파를 느꼈다· 척천경이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부하들은 무기를 들어 사방을 경계할 뿐 기파를 느끼지 못한 듯했다·
척천경 정도의 무인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을 만큼 예리하면서도 정련된 기파였다· 상대는 척천경만 딱 찍어서 도발하고 있었다·
군마대의 대주로 천하를 종횡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도발하는 것인가? 이 나를?”
쉬쉭!
그 순간 다시 돌멩이 서너 개가 날아왔다· 척천경은 당황하지 않고 중도를 휘둘러 돌멩이를 모두 부쉈다·
돌멩이가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그 순간 저쪽에서 강렬한 기파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크윽!”
군마대의 무인들이 답답한 신음성을 흘리고 그들이 타고 있는 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백여 마리의 말이 동시에 날뛰면서 장내는 극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군마대가 타고 있는 말은 전투마였다· 공포심을 느끼지 못하게 조련되었고 어떠한 경우에도 주인의 뜻에 따르도록 단련을 받았다·
그런 말들이 공포를 느끼고 날뛰다니· 척천경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지의 상대는 단순히 존재감만으로 백여 마리의 말을 공포와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척천경이 타고 있는 전투마 또한 흥분해서 날뛰려 하고 있었다· 그나마 척천경이 강력한 기도와 내력으로 억제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군마대의 무인들과 같이 꼴사나운 모습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좋다! 네놈의 면상을 내 직접 확인하마!”
척천경이 말의 안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삼십여 장을 나아가자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상대는 척천경의 모습을 확인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몸을 날렸다·
“흥! 유인하는 것인가?”
상대의 의도는 뻔했다·
군마대와 척천경을 떨어뜨려 놓는 것·
척천경은 상대의 의도를 알면서도 따라줬다· 그만큼 자신의 무력에 자신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놈이다·’
그의 본능이 말해주었다·
탕마군과 낭인들 사이에 숨어서 홍악산의 휘하 군마대 무인을 죽인 자가 분명했다·
그들의 추격전은 군마대가 있는 곳에서 거의 이십여 리 떨어진 습지까지 이어졌다· 갈대가 무성한 습지 아래 미지의 존재가 멈춰 섰다·
“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하지만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달빛에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도드라지는 곳 하나 없이 밋밋하고 평범한 얼굴의 남자였다· 그는 바로 단천운으로 위장한 진무원이었다·
진무원은 입을 여는 대신 나뭇가지로 척천경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척천경의 눈빛이 더할 수 없이 스산해졌다·
“건방진!”
그가 대지를 박차며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앙!
그의 중도가 시퍼런 빛을 토해냈다· 그의 성명절기인 팔황마도(八荒魔刀)가 펼쳐진 것이다·
팔황마도는 천하에 산재한 도법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강대한 위력을 자랑했다· 척천경은 그런 팔황마도를 극성으로 익혔다·
척천경이 펼치는 팔황마도 앞에 진무원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는 너무나 가냘파 보였다· 척천경뿐만 아니라 천하의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진무원의 표정에는 일말의 흔들림이나 불안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티티팅!
중도와 나뭇가지가 부딪치며 미약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척천경은 중도는 가공할 위력의 도강(刀罡)을 발산하고 있었다· 명장이 만든 명검일지라도 도강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는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물며 가느다란 나뭇가지 따위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척천경의 상식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진무원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는 도강의 파상 공세 앞에서도 멀쩡할뿐더러 오히려 낭창낭창 휘어지며 그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어디서 이런 놈이?’
척천경의 얼굴에 그가 느끼고 있는 당혹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진무원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때릴 때마다 오히려 강력한 반진력에 속이 진탕되었다·
그가 팔황마도를 익힌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의 눈빛이 더할 수 없이 칙칙하게 변했다·
‘이놈 강하다·’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올라왔다·
태어나면서부터 강자존의 세상인 밀야에서 투쟁을 해온 척천경이다· 평생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싸움을 해왔고 생사의 경계를 오갔다·
그가 상대한 자들 중 가장 강한 자들은 세인들이 흔히 재앙이라고 부르는 사대마장이었다· 사대마장의 무위는 실로 가공해서 척천경은 그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우위를 점해본 적이 없었다·
척천경은 진무원에게서 사대마장을 상대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진무원 같은 애송이가 사대마장과 같은 무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됐지만 그와 비슷한 기분을 들게 한다는 것이 소름 끼쳤다·
‘그럴 리 없다· 사대마장과 비슷하다니 내가 무슨 생각을····’
척천경은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며 팔황마도의 절초를 연이어 쏟아냈다·
후우웅!
날카로운 도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도강이 수십 다발 발출되었다· 그의 가공할 공세에 습지가 초토화가 되었다· 갈대가 사방으로 흩날리고 습지에 파문이 일었다·
수많은 실전을 경험한 백전노장답게 척천경의 무공은 날카로웠고 한 치의 허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무원은 척천경의 파상공세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척천경은 수많은 실전으로 단련된 무인이다· 그런 이와의 싸움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진무원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쉬쉭!
진무원의 나뭇가지가 교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언뜻 보면 평범한 검초 같았지만 중간 중간 멸천마영검의 절초를 섞었다·
진무원의 무공은 이제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었다· 단순히 멸천마영검의 육 초식을 섞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검초와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평범한 횡소천군의 초식에 멸천마영검의 제일식 유성혼(流星魂)이 더해졌다· 직벽단혼이라는 평범한 검초에 제삼식 단천해(斷天海)가 어우러졌다·
평범함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진무원이 펼치는 모든 초식에는 멸천마영검의 묘리와 위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뭇가지로 펼친다고 해서 그 위력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다·
“크윽!”
척천경이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중도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호구가 찢어져 피가 흘렀고 내장이 진탕되어 신물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온 거냐?’
운중천과 밀야 어디서도 이런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강호에 이런 자가 있다면 진즉 소문이 났어야 한다· 하지만 밀야의 정보망 어디에도 진무원에 대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놈은 누구냐?”
이제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진무원이다· 이제 와서 그가 자신의 물음에 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진무원이 답했다·
“내 이름은 단천운입니다·”
“단천운?”
척천경이 그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무원이 눈을 빛냈다·
‘세상에는 진무원이 아닌 단천운이라는 신진고수의 이름이 알려질 것이다·’
지금 척천경을 상대하는 자는 진무원이 아닌 단천운이었다· 진무원이라는 이름을 대신해 세상에서 활동해야 할 이름이었다· 그에 걸맞은 무명을 쌓아두어야 했다·
쉬가각!
척천경의 중도가 그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이제까지 수많은 이의 목숨을 빼앗은 중도에는 처절한 살기가 배어 있었다·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중도가 발산하는 살기만으로 심신이 혼미해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진무원의 부동심을 흩뜨려 놓을 수는 없었다·
진무원은 계류보를 펼쳐 척천경의 우측으로 돌아가며 손바닥을 쭈욱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은 척천경의 중도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하지만 척천경도 녹록한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진무원의 힘을 이용해 오히려 중도를 반대로 휘둘렀다·
쿠콰가각!
커다란 중도가 진무원의 반대편 허리를 향해 짓쳐 왔다· 반월형의 도강이 진무원을 향해 날아왔다·
팔황마도에서 가장 강력한 초식인 팔황개벽(八荒開闢)의 초식이었다· 마치 천지가 반월형의 도강에 갇힌 것만 같았다·
이제껏 수많은 적이 팔황개벽에 대응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척천경은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였다·
진무원이 나뭇가지를 중도를 향해 뻗었다· 멸천마영검 제이식 북천벽(北天壁)을 평범한 초식으로 위장해 펼친 것이다·
콰아앙!
나뭇가지와 중도가 격돌하며 폭음이 일어났다·
“크윽!”
“헙!”
동시에 두 사람이 답답한 신음성을 흘렸다·
척천경이 한쪽 무릎을 꿇고 중도를 지지대 삼아 버텼다· 진무원이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진무원은 그대로 습지 반대편에 추락했다·
“크헉!”
척천경이 피를 울컥 토해냈다· 검붉은 피가 그의 가슴을 적셨다· 그는 움직이려 했지만 전신이 해체되는 것 같아 그럴 수가 없었다· 지독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대주님!”
그때 군마대가 척천경을 부르며 달려왔다· 겨우 말을 진정시키고 추적해 온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대주님?”
“나는 괜찮다· 그보다 놈을 찾아라·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
척천경이 부하들에게 진무원이 추락한 장소를 가리켰다·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
분명히 진무원이 피를 토하며 추락하는 것을 지켜봤다· 의심할 것도 없이 중상이었다· 팔황개벽의 초식이 진무원을 압도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꺼림칙했다· 마치 볼일을 보고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척천경이 다시 한 번 피를 울컥 토해냈다·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중상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진무원이 추락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마대의 무인들이 급히 척천경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엔 짓이겨진 갈대와 핏자국만 있을 뿐 진무원은 보이지 않았다·
“놈은 보이지 않습니다· 핏자국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합니다·”
“놈을··· 반드시 놈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놈을 추적하거라·”
“대주의 상처가 위중합니다· 먼저 치료를 해야 합니다·”
“나는 괜··· 놈을···우웩·”
척천경이 다시 피를 토했다·
그의 몸이 푸들거리고 있었다· 상처의 아픔보다 패배의 치욕이 그를 더욱 아프게 했다·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반드시····”
척천경이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진무원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그의 몸은 자꾸만 무너지고 있었다·
진무원이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소매로 닦아냈다·
속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할 정도의 강함을 내보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게 해서는 안 됐다·
진무원은 딱 그 정도의 무력만 내보였다· 어느 정도의 내상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이 정도면 그들의 발길을 붙잡아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