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 2장 뜻하지 않은 곳에서 지인을 만난다 (1)
“흠!”
장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헤헤!”
낯익은 얼굴이 헤픈 웃음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길쭉한 얼굴이 영락없는 말상이었다· 말상의 사내는 장위천의 심복을 자처하는 장하군이었다·
장하군의 뒤로 무장을 하고 있는 수하 수십 명이 보였다· 그 수하들 앞으로 봉두난발에 옷이 찢어져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난 여인 십여 명이 서 있다·
장위천이 물었다·
“이게 다 뭐냐?”
“헤헤! 그냥 수하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이들을 만났다는 것이냐?”
“오갈 데가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마침 보이는 사내놈들은 모조리 죽이고 계집들만 납치해 왔다?”
“흠흠! 그냥 두목이 적적하실 것 같아서····”
장하군의 말에 장위천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골이 다 지끈지끈 아파왔다·
장위천은 염마채(閻魔寨)의 채주였다· 염마채는 산동성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녹림의 산채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장위천의 휘하 녹림도 수는 삼백여 명으로 산동성 내에서 잔혹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장위천이 무서운 눈으로 장하군을 노려봤다·
“당분간 근신하라고 한 말 잊었느냐?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쳐?”
“그게 수하들이 너무 답답해해서····”
“이 미친놈아! 이 와중에도 수하들 탓을 해? 그리고 수하들이 답답해한다고 내 명령을 어겨? 네놈이 지금 제정신이냐?”
“그 그게····”
장위천이 불같이 화를 내자 장하군이 자라처럼 고개를 잔뜩 움츠렸다· 하지만 전혀 반성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채주 장위천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밀야와 운중천의 삼년전쟁 이후로 산동성은 무주공산이 되다시피 했다·
물론 철혈성이라는 초강세가 자리를 잡았지만 그들은 욕화도에서만 칩거할 뿐 녹림도의 토벌엔 관심이 없었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나 다른 문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밀야와 운중천의 전쟁에만 쏠려 있었다·
그 누구도 염마채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토벌할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꾸만 활동을 자제하려 하는 장위천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장위천이 활동을 자제시킬수록 휘하 녹림도는 더더욱 밖에 나가고 싶어 했고 부채주인 장하군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장하군은 바람이라도 쐬고자 녹림도와 염마채를 나섰고 마침 인근을 지나던 마을 주민들을 발견하고는 눈이 뒤집어졌다·
그들은 사내들을 죽이고 계집은 모조리 납치해 왔다· 장위천의 반응이 염려스럽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낼 줄은 정말 몰랐다·
장하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채주께서도 그동안 산채의 계집들에게 질리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저 채주께서 새로운 계집들을 품고 기력을 되찾으시라고·”
“그래서 사내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계집들을 데려왔단 말이냐? 오직 나를 위해서? 그걸 나보고 믿으란 것이냐 이 미련한 새끼야?”
“그게··· 저희도 좋고 채주님은 더 좋으시고····”
“크윽! 이걸 죽여 살려!”
장위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의 심기가 불편함을 느낀 장하군은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서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에 장위천이 차마 화를 내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머리도 안 좋고 눈치도 없는 놈이 성격은 잔혹하니 네놈은 필시 우리 산채에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내 손으로는 네놈을 죽일 수 없으니 그게 한이로구나·”
“헤헤! 형님·”
장하군이 다시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그 모습에 장위천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장하군은 바로 그의 친동생이었다· 그것이 바로 장위천이 장하군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였다·
‘당장은 밀야와 운중천의 전쟁 때문에 무림인들이 우리 같은 녹림채에 신경을 쓰지 못하지만 차후 어느 정도 수습 국면에 이르면 반드시 우리를 토벌하려 할 것이다· 약탈에도 균형이 필요한 법인데 저 멍청한 놈은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하고 있으니 차후 강호의 공적이 될 것이 분명하구나·’
속에선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당장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속이 더 쓰렸다·
그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장하군이 납치해 온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하군의 말처럼 여자들의 상태는 제법 괜찮았다· 이곳까지 끌려오는 동안 고초를 당했는지 옷이 찢어지고 여기저기 피멍이 든 것만 빼면 말이다·
장위천의 시선이 개중 가장 빼어난 미색을 지닌 아낙을 향했다· 아낙의 품에는 이제 겨우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동이 안겨 있었다·
소동의 눈 색깔은 검었다· 너무도 새까매서 마치 검은 보석이 두 눈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피부는 창백하게 보이리만큼 하얘서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보였다·
장위천이 그런 소년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뭐야?”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가 묘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몸은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눈빛엔 한 점의 흔들림도 없다· 마치 은밀히 관찰당하는 듯한 느낌에 장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어미가 급히 소동을 자신의 몸으로 가리며 보호했다·
“이 아이는 안 돼요·”
“뭐가 안 된단 말이냐?”
장위천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어미가 입술을 질근 깨물며 장위천을 노려봤다· 그녀의 눈에는 원독이 가득했다·
그녀와 마을 사람들은 이웃 마을에서 벌어진 잔치에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장하군이 이끄는 녹림도를 만나 지아비와 마을 사람들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그녀가 속해 있던 세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들 하나뿐이었다· 아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때 장하군이 장위천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이년이 제일 독종입니다· 어찌나 독한지 하마터면 이년 때문에 몇 놈이 혀가 잘릴 뻔했습니다·”
계집을 납치해 오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바로 녹림도의 욕정을 풀기 위해서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몇몇 녹림도가 그녀를 겁간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격렬히 반항했다· 닥치는 대로 할퀴고 물어뜯는 그녀의 독기에 녹림도마저 질릴 정도였다·
“흠!”
장위천이 소동의 어미를 바라봤다· 여전히 그녀는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의 그의 영역이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을 경배해야 했다·
“계집 다시 한 번 나를 그렇게 바라보면 네 아들의 목을 따버리겠다·”
그의 협박이 먹혔는지 어미가 급히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소동은 여전히 장위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새까만 눈에 장위천의 모습이 맺혀 있다·
장위천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어미나 자식이나 묘하게 그의 신경을 긁는 구석이 있었다·
장위천이 소동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여전히 소동은 장위천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뭐냐? 꼬마야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느냐?”
“····”
소동은 대답이 없었다· 그 모습이 장위천의 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의 시선이 한쪽에 서 있는 장하군을 향했다·
“어디서 이런 것을 데려와서····”
“그 어미에 그 자식이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더라구요· 제 어미를 닮아 아주 독종입니다· 그래도 어미가 예쁘니까····”
“흥!”
장위천이 코웃음을 치면서 일어나는 듯하더니 갑자기 소동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쉬악!
내력이 실린 발길질이었다· 격중하면 그대로 즉사였다·
위기의 순간 어미가 소동을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큭!”
예상치 못한 어미의 반응에 장위천이 발을 거두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퍼엉!
“악!”
마치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어미의 외마디 비명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소동과 어미는 무려 삼 장이나 뒤로 날려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미와 소동의 몸이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소동은 그나마 무사했지만 온몸으로 장위천의 발길질을 막은 어미는 내장이 터지고 부러진 갈비뼈가 살갗을 뚫고 삐져나와 있었다·
그 상태에서도 어미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 아들 너만 혼자 세상에 남겨둬서 미안해···· 엄마가····”
그제야 소동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란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빛은 너무나 미미해서 모르는 사람은 결코 소동의 감정 변화를 알 수가 없었다·
장위천이 그랬다· 그는 소동의 표정에 별반 변화가 없자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퉤! 살모사 같은 놈이구나· 제 어미가 대신해 죽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다니·”
그래도 소동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의 망막엔 죽어가는 어미의 모습만 맺혀 있었다· 소동의 동공이 흔들렸다·
숨이 다하면서도 어미는 오직 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홀로 두어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자신을 향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런데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괴물이라 불렀다· 어려서부터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데다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식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했고 그렇게 소동은 괴물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소동의 어미와 아비는 알고 있었다· 소동이 감정 표현이 서툴 뿐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소동은 마음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다· 마을 사람들이 배척할수록 소동은 더욱 깊이 자신만의 세계로 천착해 들어갔다·
어미와 아비는 그런 소동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소동의 눈앞에서 어미의 생명의 불꽃이 꺼지고 있었다·
소동이 어미를 향해 조그만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어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어미의 마지막 미소였다·
소동의 내면에서 힘들게 구축해 오던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장위천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여전히 감정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재수 없게····”
장위천이 다시 한 번 소동을 걷어차려 했다· 이번엔 좀 전보다 더욱 강한 내력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소동이 똑바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동의 눈에는 살기가 맺혀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이상하게 전신에 소름이 올라오고 한기가 느껴졌다·
“큭! 무슨 눈빛이····”
잠시나마 소동의 눈빛에 압도당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무엇보다 이대로 소동을 살려두면 후환이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양손에 내력을 끌어 올릴 때였다·
“우와악!”
갑자기 산채 입구 쪽에서 수하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냐?”
장위천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에도 수하들의 비명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근처에 있던 도적 한 명이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입구 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뛰어간 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비명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으아악!”
보지 않아도 아비규환의 참상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냐?”
장하군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장하군의 모습을 보며 장위천이 이를 악물었다·
‘놈이 이 악운을 불러온 것이 분명하구나·’
그것은 일종의 예감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가 부하들에게 외쳤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모두 각오를 단단히 하거라!”
“예!”
부하들이 모두 무기를 꺼내 들고 비명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모두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동의 시선도 비명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순간 소동의 눈에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체구에 잿빛 피풍의를 걸친 남자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특징 없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남자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남자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묘하게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렸다· 장위천을 비롯한 사람들은 그런 남자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절로 오한이 일어났다· 머리로는 남자의 모습을 외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남자가 나타난 순간 시간이 멎고 공기의 흐름마저 멈춘 것 같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공간 장악력이었다· 남자는 단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오롯한 존재감의 소유자였다·
장위천은 단 한 번도 이와 같은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수다· 그런 고수가 왜?’
장위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때였다· 이제껏 장위천의 눈치만 보던 장하군이 기세 좋게 앞으로 나섰다·
“웬 놈이냐? 이곳이 염마채라는 것을 알고 감히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염마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그가 도적들의 흔적을 추적해 온 것이다·
그가 지나온 자리엔 도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꺽꺽거리고 있었다·
마치 천식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가 힘들었다· 팔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무기력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본 것은 진무원이 왼손의 검결지로 자신들을 가리키는 모습뿐이었다· 그의 두 손가락이 가슴을 향한 순간 호흡이 힘들어지고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무기력해졌다·
‘이게 무슨?’
‘흐윽! 크읍!’
도적들은 겨우겨우 숨을 이어가고 있었고 진무원은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도적들은 모르겠지만 진무원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검기로 그들의 중요 혈맥 몇 군데를 잘라놓았다· 특히 호흡기로 통하는 혈맥을 잘라놓았기에 호흡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들은 영원히 저렇게 무기력한 상태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무원이 그들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진무원의 시선이 장위천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고 있는 아낙들을 향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방금 전 잡혀온 마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진무원의 시선이 문득 아낙들 앞쪽에 있는 소동에게 향했다· 유난히도 새까만 눈동자에 담긴 허무함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광포함과 살기가 엿보였다·
소동의 나이가 이제 겨우 대여섯 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천하의 그 누구도 저 나이 때 저런 살기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진무원은 소동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여인의 시신을 보았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소동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눈동자를 본 순간 전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아이구나·’
아비를 잃은 아이가 이제 어미를 잃었다· 그리고 부모를 잃은 소년의 가슴에서 무언가 깨어났다·
장위천을 비롯한 도적들은 그런 소년의 변화와 살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한 소년의 삶과 운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진무원이 소년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장하군이 부하들을 이끌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가 칼을 들고 소리쳤다·
“웬 놈이냐고 묻지 않느냐 이 후레자식아!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네놈의 목을 꺾어놓겠다! 컥!”
투웅!
그 순간 강렬한 충격파가 그의 전신을 덮쳤다· 장하군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족히 십여 장은 뒤로 날려가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장하군은 그대로 절명했고 장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진무원을 바라보는 도적들의 눈에는 불신과 공포의 빛이 가득했다· 그가 손을 어떻게 쓰는지도 보지 못했는데 장하군이 절명했기 때문이다·
“놈!”
보다 못한 장위천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박도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박도를 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애써 심정의 동요를 감추려고 했지만 그는 눈앞의 남자가 두려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워져 갔다· 보이는 것은 오직 눈앞의 남자뿐이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은 염마채가 우스운 모양이구나! 감히 장위천이 지배하는 염마채에 들어와 난동이라니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마을 사람들은 왜 죽였습니까? 그저 재물만 빼앗았어도 되었을 텐데·”
“그건····”
장위천이 말끝을 흐렸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죽은 장하군의 시신을 노려봤다·
‘진작 네놈을 죽였어야 하는데· 네놈이 사신을 끌고 와 우리를 몰살시키는구나· 잘 죽었다 놈· 아니었으면 내가 육시를 했을 것이다·’
장위천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그가 그토록 염려하던 최악의 상황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죽는 소리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염마채의 채주라는 자존심이 그를 물러서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큭!”
갑자기 허리 뒤쪽에서 극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소동이 그의 허리에 칼을 박고 있었다· 장하군이 떨어뜨린 그 칼이었다· 비록 힘이 약해 손가락 두 마디도 채 안 들어갔지만 장위천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소동은 그 까만 눈으로 장위천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 꼬마 놈이····”
감히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 소동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가 소동의 목을 향해 박도를 휘둘렀다· 격중되는 순간 소동의 목숨은 끝이다·
순간 눈앞이 희끗해지면서 누군가 그 앞에 나타났다· 진무원이었다· 어느새 그가 공간을 단축하여 소동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그의 두 손가락이 박도의 시퍼런 날을 짚어왔다·
장위천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놈 손가락과 목을 동시에 잘라주마·’
그는 박도에 공력을 잔뜩 집어넣었다· 그는 이번 한 수로 진무원에게 큰 상처를 입히진 못해도 손가락 정도는 자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칼이 진무원의 두 손가락과 닿는 순간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쩌엉!
쇳소리와 함께 그가 들고 있던 박도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부서진 도편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그중 몇 개는 장위천의 가슴에 박혔다·
“크악!”
진무원은 비칠거리면서 물러나는 장위천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느냐?”
소동에게 하는 말이다·
이제까지 굳게 다물고 있던 소동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게··· 무공을 가르쳐 줘요· 이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