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 2장 소년이 어른이 되는 시간 동안 잠을 자는 이도 있다 (1)
진무원의 모습은 혈인을 방불케 했다· 그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마다 적갈색의 무복에서는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서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소무상은 진무원만이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을 남겼다· 진무원은 그 흔적을 따라 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은 끊임없이 나타나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때문에 좀처럼 소무상이 이끄는 일행을 따라잡지 못했다·
문득 그가 뒤를 돌아봤다·
운중천의 거대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운중천은 수많은 등불로 인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결코 잠들지 않는 거대한 성은 오만하게 진무원을 굽어보는 듯했다·
진무원은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렸다·
‘내 잘못이다· 나의 오만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좀 더 신중해야 했다· 좀 더 자신을 낮춰야 했다· 아비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더 완벽해야 했다· 더 은밀하게 나 자신을 숨겨야 했다·’
진무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경공을 펼쳤다·
그의 자책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감정에 함몰될 때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눈앞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집중해야 했다·
운중현을 빠져나온 진무원은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이젠 보는 이도 신경 쓸 것도 없었기에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다·
지잉!
갑자기 양쪽 관자놀이가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왔다· 진무원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며 설화를 휘둘렀다·
그의 망막에 거대한 회색 바위가 확대됐다·
콰앙!
회색 바위에 직격당한 진무원이 굉음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거의 십여 장을 날려간 진무원은 커다란 나무에 몸을 부딪치고 나서야 멈춰 섰다·
“크윽!”
진무원이 답답한 신음성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떨어진 회색 바위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회색 바위가 바닥에 박혀 회색 바위 중심으로 방원 오 장여에 달하는 거대한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흐흐!”
그때 갑자기 회색 바위가 음소를 흘리며 꿈틀거렸다· 거대한 몸통에서 고개가 쳐들리고 통나무처럼 두꺼운 팔과 다리가 움직였다· 진무원을 내려다보는 붉은 두 눈에서는 광기가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사위를 압도하는 광포한 기세가 발산되고 있었다·
진무원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는 이런 자를 알고 있었다·
“혼··· 마(混魔)?”
“흐흐! 오랜만이구나 꼬마야·”
거대한 불곰을 연상시키는 거한은 바로 혼마 태무강이었다· 그가 광포한 살기를 줄기줄기 흘리며 진무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왜?”
태무강에게 공격당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진무원이다·
은한설에 의하면 태무강은 밀야의 내분을 일으킨 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습격에 은한설의 사부인 소금향이 중상을 입었고 밀야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밀야의 내분을 일으킨 자가 관대승의 명을 받는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생각보다 더 큰 일이 수면 아래서 일어나고 있었다·
진무원이 허리를 폈다· 그러자 태무강이 진무원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
혼돈의 마인이라 불리는 자· 그의 기도는 칠 년 전에 비해 더욱 광포하고 위압적이었다· 그때도 숨을 쉬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예 마주 서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과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지난 칠 년 동안 진무원이 장족의 발전을 했듯이 그 역시 무섭도록 발전한 것이 느껴졌다·
태무강이 히죽 웃었다·
“제법이구나 꼬마야·”
“당신도 운중천 소속이었습니까?”
“글쎄다·”
“관대승의 명을 받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군요·”
“격장지계가 제법이구나· 흐흐!”
“아닙니까?”
“하지만 어차피 내 손에 죽을 놈이니 말해주마·”
“····”
“관대승은 운중천에 속해 있는 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운중천에 충성을 바치는 것은 아니지· 그가 충성을 바치는 존재는 따로 있다·”
“그럼 당신도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겁니까?”
“흐흐! 난 누구에게도 충성을 하는 자가 아니다· 오히려 증오하는 쪽에 가깝지·”
“그런데 왜?”
“그 이상은 네놈이 알아보려무나· 물론 이 자리에서 살아나간 후에 말이야·”
쿠콰콰!
태무강이 발산하는 가공할 기파에 주위의 대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근처에 있던 나무들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하게 흔들리고 숲 속에 있던 짐승들이 거품을 물고 도주했다·
그가 발산하는 기파가 숲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진무원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서는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혼마·’
후웅!
위기를 느낀 설화가 먼저 검명을 흘렸다· 그러자 태무강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 검 요사한 기운을 가지고 있구나·”
진무원은 대답 대신 설화를 들어 태무강을 겨눴다· 그러자 태무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무원과의 거리는 십여 장이 넘었다· 그런데도 머리를 관통하는 듯한 예기가 느껴졌다· 칠 년 전 그가 기억하던 꼬마는 이제 한 사람의 당당한 검객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위협적인·
“흐흐! 역시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군·”
태무강이 음소를 흘리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기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회색의 혼탁한 강기가 발산되었다·
휘류류!
태무강의 몸 주위로 혼탁한 강기가 폭풍처럼 휘돌았다·
‘반탄강기(反彈罡氣)인가?’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태무강의 반탄강기는 특별했다· 이미 칠 년 전에 경험했기에 진무원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태무강은 그가 강호에 출도한 이래 만난 최강의 적이었다· 그에게선 연천화 이상의 존재감과 파괴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럼 어디 한번 질펀하게 놀아보자꾸나 꼬마·”
‘꼬마’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무강의 거대한 동체가 진무원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진무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눈으로는 놓쳤지만 그의 전방위 감각은 생생하게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측!’
계류보를 펼치며 설화를 그었다·
츄화학!
비단 폭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성이 울려 퍼지고 설화와 태무강의 강기가 격돌하며 두 사람의 몸이 휘청거렸다·
태무강의 강기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진무원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진무원은 표표히 움직이며 그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흘리면서 태무강 가까이 접근했다·
반탄강기의 강대한 위력에 호구가 찢어지고 내장이 진탕되었다· 그나마 그림자 내공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첫 번째 격돌에서 그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을 것이다·
전신에 엄청난 충격이 쌓이고 있었지만 진무원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첫 격돌에서 밀리면 다시 승기를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멸천마영검의 제일식인 유성혼이 펼쳐졌다· 유성처럼 날아간 설화는 정확히 태무강의 목젖을 노리고 있었다·
인간의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섬격(閃擊)이었다· 하지만 태무강은 불가사의한 인지 능력을 발휘해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반탄강기를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공격하고 방어하는 그 모든 것을 반탄강기로 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진무원이 마냥 밀리는 것도 아니었다·
진무원은 북천벽과 단운해의 초식을 연이어 펼쳐 태무강을 공격했다· 설화가 공기를 가르고 걸리는 모든 것을 베었다· 하지만 태무강의 반탄강기는 베어지지 않았다·
태무강의 반탄강기는 철벽(鐵壁)과 같은 방호력과 호랑이의 맹아(猛牙) 같은 공격력을 자랑했다·
‘이 정도로는 저자의 반탄강기를 뚫을 수 없어·’
진무원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높였다· 그렇지 않아도 유성처럼 허공을 가르던 설화의 검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너무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보니 공기와의 마찰로 달아오른 것이다·
키이이!
광휘처럼 두르고 있던 공기가 찢어지며 새벽하늘이 비명을 내질렀다·
태무강의 표정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 역시 진무원의 이번 일격에 담긴 위력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전까지의 공격도 무서웠지만 지금의 일격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기꺼웠다·
“크크! 좋구나·”
광소를 터뜨리며 거대한 동체를 진무원을 향해 날렸다· 그의 거대한 몸 자체가 최강의 무기였다·
쩌어엉!
설화와 태무강의 거대한 동체가 격돌했다·
태무강의 광기 어린 눈동자에 득의의 빛이 떠올랐다· 그의 동체를 이용한 공격에 진무원의 허리가 뒤로 꺾였기 때문이다·
“흐흐!”
하지만 그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어깨에서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진무원의 검이 그의 반탄강기를 뚫고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태무강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크하! 설마 나의 반탄강기를 뚫을 줄이야· 정말 대단하구나 북천문의 어린 사자여·”
“반탄강기라고 무적은 아니니까요·”
“맞다· 반탄강기가 무적은 아니다· 더욱 강한 힘을 만나게 되면 깨지게 되어 있지· 하나 내가 펼치는 반탄강기는 특별하지· 너는 왜 그런지 아느냐?”
“····”
“바로 혼원염마공(混元閻魔功)이 근원이기 때문이다· 흐흐!”
“혼원염마공?”
“칠 년 전에 경험해 보지 않았더냐?”
진무원은 순간적으로 칠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담수천과 심원의는 태무강의 혼원염마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이유가····’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진무원이 전신을 흠칫 떨었다· 몸속에서 한줄기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침투경?”
“흐흐! 혼원염마기라고 한다·”
태무강의 입꼬리가 뒤틀려 올라갔다·
진무원이 그의 몸에 상처를 냈을 때 그 역시 진무원의 몸에 혼원염마기를 침투시켰다·
그가 익힌 혼원염마공은 쇠를 잡아먹고 몸집을 불리는 불가사리 같았다· 침투한 상대의 내공을 잡아먹으며 갈기갈기 찢고 분해해 취약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가장 상극의 기운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공격해 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혼원염마기는 진무원의 내공을 분석하며 심맥을 공격해 오고 있었다·
혼원염마기의 공격에 진무원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모습에 태무강이 득의 어린 미소를 지었다·
“흐흐! 버틸 수 있겠느냐 어린 사자여?”
담수천이 그랬듯이 심원의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듯이 진무원도 그렇게 당할 거라고 확신하는 모습이다·
진무원이 고개를 들어 태무강을 바라보았다· 태무강의 예상과 달리 진무원의 눈빛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당신도 잊어버리고 있는 모양이군요·”
“무얼 말이냐?”
“그날의 상처를·”
“뭐? 크윽!”
갑자기 태무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이 어깨로 향했다· 설화에 스친 상처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상처라도 순식간에 낫게 하는 치유력을 가진 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그의 치유력이 듣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태무강은 칠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칠 년 전에도 그랬다· 그때도 진무원에게 당한 상처는 쉬이 낫지 않고 오히려 벌어져만 갔다·
“네놈!”
“이제야 동등해진 것 같군요·”
진무원이 혼원염마기에 당했듯이 태무강도 그림자 내공에 당했다·
태무강이 이빨을 갈았다·
“제법이구나 진무원· 하나 오늘 이 자리가 너의 무덤이 될 거란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 겁니다·”
진무원이 설화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태무강의 혼원염마기에 대응해 그림자 내공이 움직였다· 그의 몸 안에서는 혼원염마기와 그림자 내공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태무강도 마찬가지였다·
진무원과 태무강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우우!
광포한 바람이 전장에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