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 6장 정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3)
심원의는 눈을 크게 치뜨고 조월을 올려다봤다·
어느 샌가 조월의 몸에 어린 검은 기류가 더욱 짙어져 있었다· 흑무객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기괴한 모습이었다·
비무대 밑에 있는 군웅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월의 몸에서는 사이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이한 기운이 심원의의 전신을 옥죄어왔다·
심원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대항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압박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척마대 겨우 그 어린것들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네놈은 밀야구나·”
“흐흐!”
조월은 대답 대신 음소를 흘렸다·
심원의의 음성은 비무대 아래로 멀리멀리 퍼져 나갔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밀야라니?”
“척마대의 결승까지 오른 자가 밀야라니 이 무슨····”
군웅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밀야를 상대로 최전선에서 싸울 무인을 뽑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런 영광스런 자리에 밀야의 밀정이 숨어들어 대주를 뽑는 결승에 오르다니·
사투 끝에 척마대에 들어간 무인들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조월이 그런 군웅들을 훑어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밀야에 대항한다 하였나?”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군웅들의 귀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겨우 이런 오합지졸들로 말인가?”
“다 닥쳐랏!”
“각오하거라 중원이여· 이제 곧 밀야의 무서움을 알게 되리라· 살아있는 자들이여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거라· 숨을 쉬는 것조차 두려운 순간이 곧 올 테니까· 대지는 피로 물들고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생(生)을 저주하게 될 것이다·”
우웅!
그의 저주 어린 말에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흡사 당장에라도 그의 말이 실현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전신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조월의 기이한 존재감에 압도당한 무인들은 감히 덤벼들 생각을 못하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조월은 그런 군웅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문득 그의 시선이 군웅들 한가운데 멈췄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군웅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곳에 서 있는 적갈색 피풍의를 입은 남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진무원과 조월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문득 조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군웅들이 의문을 가졌다·
‘저자가 왜 북검을 보며 웃지?’
조월은 단지 웃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군웅들의 의구심은 커져만 갔다·
문득 조월이 몸을 돌려 심원의를 바라봤다·
“이제 끝을 내야겠군·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너의 무력함을 원망하거라·”
“닥치거라! 감히 밀야 따위가····”
심원의가 이를 악물었다·
문득 그의 눈에 단상에 앉아 있는 심무외의 모습이 보였다· 자식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그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방관하는 모습이 심원의의 오기를 자극했다·
“나는 심원의다· 사사천의 소천주이고 척마대의 대주가 될 자이다· 결코 밀야의 밀정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허리를 펴고 사자후를 터뜨렸다·
비록 무공은 열세지만 그 당당한 기백만큼은 조월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단상 아래서 지켜보던 군웅들의 뇌리에도 깊이 각인되었다·
“흐흐! 곧 죽어도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것인가? 좋다 네놈의 뜻대로 해주마· 네놈은 죽어서도 결코 대지에 눕지 못할 것이다·”
조월이 심원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몸에서는 예의 짙은 검은 기류가 휘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사신(死神) 같았기에 심원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된다!”
“놈을 막아랏!”
단상 밑에 있던 군웅 몇몇이 참지 못하고 조월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젠 대주를 뽑는 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운중천과 중원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생겼다·
“크악!”
“흐어억!”
조월을 막으려던 자들이 비무대 위에 오르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근처에 있던 다른 군웅들이 암습을 한 것이다· 그들은 어제까지 같이 웃고 떠들며 비무대회를 함께 지켜보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암습 후 재빨리 다시 군웅들 사이로 모습을 숨겼다·
“밀야가 군웅들 사이에 숨어 있다·”
군웅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몇 명이나 더 밀야의 무인이 자신들 사이에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심원의의 지척으로 다가온 조월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을 휘돌던 검은 기류가 손으로 모여들었다·
심원의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조월의 손에 모인 막대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몸이 정상이라도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기운이 조월의 손에 담겨 있었다·
조월이 심원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잘 가거라 사사천의 소천주이며 척마대의 대주가 될 뻔한 자여·”
쉬아악!
강기의 폭풍이 심원의를 향해 날아왔다· 심원의는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크윽!”
쿠와아앙!
엄청난 기운이 심원의의 전신을 덮쳤다· 몸이 떨리고 머리가 바람에 미친 듯이 흩날렸다· 그런데 생각하던 것보다 고통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원의가 눈을 슬며시 떴다· 그러자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보였다· 평야처럼 광활한 등판과 사자의 갈기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심원의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출관했구나·”
“괜찮습니까?”
“난 괜찮다 수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담담히 말하는 이는 바로 담수천이었다· 그가 폐관 수련을 마치고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조월이 심원의를 대신해 강기를 막아낸 담수천을 보며 눈을 빛냈다·
“네놈은 누구냐?”
“담수천 그게 내 이름이오·”
“창천고성?”
조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역시 담수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 시대의 강호를 살아가는 젊은 무인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방해를 하겠다는 것인가?”
“밀야와 운중천 우리 사이에 더 말은 필요 없지 않소?”
“그렇군· 그래 네 말이 맞다·”
마지막 말이 끝나는 순간 조월의 몸이 마치 엿가락처럼 쭉 늘어나며 쇄도해 들어왔다· 그가 손을 들자 검은 기류가 담수천을 향해 날아왔다·
검은 기류가 코앞에 들이닥칠 때까지도 담수천은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 무방비 상태인 그의 모습에 군웅들이 경호성을 터뜨렸다·
“위험····”
슈화학!
그 순간 담수천의 몸에서 강력한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이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진무원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담수천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강력한 빛에 조월의 몸을 갑옷처럼 둘러싸고 있던 검은 기류가 벗겨져 나갔다· 맨몸으로 노출된 조월의 얼굴과 몸 위로 담수천의 커다란 주먹이 연이어 쏟아졌다·
조월의 얼굴과 몸이 일그러지고 우그러들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그야말로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사이 조월의 몸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부서졌다·
뼈란 뼈는 모조리 부서져 있었고 안면은 함몰되어 이목구비를 구별할 수조차 없었다·
“끄으으!”
조월의 입술을 비집고 기괴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손을 들어 담수천을 가리켰다·
“그륵!”
손끝이 떨리고 있고 망가진 성대 사이로 헛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지만 짓이겨진 혀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무공이냐?’
그의 절규는 입안에서만 소용돌이쳤다·
성광류(聖光流)·
백오십 년 전 한 미치광이 무인에게서 시작된 세상 모든 사마(邪魔)의 대척점에 선 무공·
지난 십 년 동안 담수천은 오직 성광류를 갈고닦는 데 매달렸다·
그의 십 년은 궁극의 완성을 위한 집념의 시간이었다· 한 인간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방향을 잡고 십 년이란 세월을 쏟아부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성광류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으며 약점이 사라졌다· 하지만 담수천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성광류는 더 강렬하게 빛나야 하고 하늘이라도 부숴 버릴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폐관수련만으로는 이 이상 한계의 벽을 깨는 것이 불가능했다·
치열한 실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실전을 치르면 치를수록 성광류는 더 강해지고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것이 담수천이 폐관을 깨고 나온 이유였다·
“끄으으! 너 너는····”
담수천을 잡을 듯 허우적거리던 손이 떨어지고 조월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
장내에 질식할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조월의 등장에 공포를 느끼던 이들은 담수천의 등장으로 전율을 느꼈다· 그렇게 공포스럽던 조월을 단 일격에 격살하고 가공할 존재감을 세상에 드러낸 담수천·
강호 역사상 이렇게 극적으로 등장한 자가 또 있을까?
마치 이 모든 것이 잘 짜인 한 편의 경극처럼 충격적이었다·
군웅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진무원을 향했다·
담수천과 진무원·
당금 강호를 울리는 신진 고수이다·
백인비무행으로 무패의 전설을 각인시킨 담수천·
북검이라는 별호와 함께 새로운 전설을 써나가는 진무원·
두 사람의 조우는 밀야를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긴장감을 자아냈다·
담수천이 비무대를 걸어 내려왔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그의 보보마다 막대한 역도가 실려 있었다·
그 위압감과 존재감에 군웅들은 자신도 모르게 분분이 비켜서 길을 내줬다· 그렇게 진무원과 담수천 사이에 길이 생겼다·
담수천은 그 길을 걸어 진무원에게 다가왔다· 진무원은 그런 담수천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두 무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담수천은 십 년 전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감을 풍기고 있었다· 그의 가공할 존재감은 이곳 비무대 주위에 모인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마침내 담수천이 진무원의 앞에 섰다· 십 년의 세월을 격하고 두 사람은 다시 마주한 것이다·
힘이 없던 어린 소년은 북검이라는 별호의 검객이 되었고 창천의 고성이라는 위명을 얻은 젊은 무인은 이제 절대자의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이는 담수천이었다·
“오랜만이오·”
“십 년만인 것 같군요·”
“벌써 그렇게 되었구려·”
담수천이 미소를 지었다·
강렬한 기도만큼이나 여유로우면서도 강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폐관수련을 한다 들었습니다· 원하시는 성취는 얻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어떤 것 같소?”
“좋아 보이는군요·”
“그렇소?”
담수천의 미소가 짙어졌다·
스스로 강자임을 자각하고 믿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담긴 미소였다·
“진 소협도 좋아 보이오· 내가 폐관에서 나오고 처음 들은 이야기가 바로 북검이라는 별호였다오· 혜성처럼 등장한 강호의 젊은 검객· 그 별호를 처음 듣자마자 직감했지· 진 소협일 거라고 당신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검을 빼 든 것이라고·”
“····”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아시오?”
“뭡니까?”
“진 소협과 자웅을 겨루는 것·”
“저 역시 그렇습니다·”
“역시····”
담수천의 피가 들끓듯 진무원의 피 역시 들끓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가 자극이 되고 있었다·
“조만간 따로 만납시다 진 소협·”
“얼마든지·”
“내 곧 사람을 보내겠소·”
“기다리겠습니다·”
북검과 창천고성은 대결을 약속했고 군웅들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일만에 가까운 사람이 공증인이 됐다·
“그전에····”
담수천이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군웅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밀야의 무인들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의 눈에는 너무나 똑똑하게 보이고 있었다·
“정리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