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 5장 잔칫상을 뒤엎는 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2)
비무대회의 특성상 부상자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중상자는 나왔을지언정 단 한 명도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었다· 대결하는 무인들이 알아서 공력을 배분하거나 초식의 살기를 죽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문율이 오늘 최초로 깨지고 말았다·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것도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라 강호의 최고 기재 중 한 명이라 평가받는 현공휘였다·
칠소천의 일원으로 광투귀란 별호까지 얻은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현공휘의 죽음에 운중천 수뇌부들은 당혹해했다· 비무대회 중에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하필 그 대상이 칠소천의 일원이라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당황한 것은 수뇌부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창룡회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서문혜령이 느낀 당혹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장 척마대를 장악하려던 그녀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창룡회 내에서도 큰 동요가 일어났다·
비록 비무대회를 통해 운외사기라는 신흥 무인들이 부각되었지만 그들의 무위가 창룡회를 위협할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의 등장이었다· 더군다나 현공휘를 죽인 조월의 진신 무력은 그야말로 미지수였다·
현공휘를 죽인 조월의 처분을 두고 운중천 수뇌부들이 비상회의를 했다· 하지만 정당한 비무 중에 나온 사고였기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비무대회는 재개되었지만 당장 조월에 대한 뒷조사가 시작되었다· 알려진 바로 조월은 철장문(鐵掌門)이라는 문파의 비전을 이었다고 했다·
철장문은 강호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일인전승의 문파였는데 최근 삼십 년간 강호에 후계자가 모습을 보이지 않아 멸문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일반적인 무인들은 일인전승의 문파라는 단어에 굉장한 신비감을 느끼지만 대다수의 명문은 오히려 일인전승이라는 단어를 쓰는 문파를 우습게 보았다·
세상을 쩌렁쩌렁 울리는 상승의 무공이란 것은 결코 한두 세대 만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공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지식을 가진 천재들이 수많은 시간을 들여 조금씩 보완하는 것이다·
명문세가에서 제대로 된 무공이 나오기까지 최소한 대여섯 세대가 지나야 한다는 것이 강호의 중론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버텨낼 재력과 인적 재능의 투입은 결코 일개인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랜 세월을 견뎌온 명문일수록 강한 무공을 다수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일인전승의 문파라 불리는 대부분의 문파에겐 그 정도의 긴 시간을 버텨줄 재력과 무재가 출중한 제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허울 좋은 개살구일 확률일 구 할이 넘었다·
간혹 희대의 천재가 나타나서 상상도 못할 무공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강호 전체를 통틀어 봐도 극히 드물었다·
이제까지 강호 명문들은 철장문 역시 그저 그런 문파로 봤다· 일인전승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포장한 개살구로 말이다·
하지만 조월의 등장은 그런 선입견을 송두리째 날려 버렸고 사람들은 뒤늦게 철장문과 조월의 무공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움직였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진무원의 등장을 필두로 조월까지· 이제까지 강호의 일관된 흐름과는 미묘하게 다른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조월은 그렇게 새로운 폭풍의 핵으로 등장했다· 현공휘를 죽임으로써 척마대에 당당히 들 수가 있었고 이제 부대주와 대주 자리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
마지막 본선에서 상대를 이기고 최종 쉰여섯 명에 꼽힌 무인들은 모두 조월을 경계했다· 그들의 목표도 단순히 척마대원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 부대주급의 수뇌부가 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목표였다·
심원의는 창룡회의 회원들을 모았다·
조월의 손에 죽은 현공휘를 제외하고 모두 열여섯 명의 무인이 척마대에 들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성과는 얻은 셈이다· 하지만 심원의는 물론이고 서문혜령 또한 이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대주직을 저희가 차지해야 해요·”
“물론이다· 부대주직으로 만족하기엔 나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조월을 이겨야 해요·”
서문혜령이 조월을 언급하자 창룡회 무인들의 얼굴에 전의가 떠올랐다· 미우나 고우나 현공휘는 창룡회의 구성원이었다· 그의 죽음이 슬프지는 않지만 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 것이 사실이다·
심원의의 시선이 서문혜령을 향했다·
“철장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섬서성에 기반을 둔 문파라는 것 정도밖예요· 대부분의 일인전승의 문파들이 그렇듯 철장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요·”
“음!”
“조심해야 해요· 현 소협과의 대결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매우 기묘한 맨몸 무공을 쓰고 있어요· 자칫 방심하다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어요·”
“감히 나를 현공휘와 비교하는가? 나는 현공휘처럼 그에게 당하지 않는다·”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흥!”
심원의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그런 심원의의 모습에 서문혜령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든 심원의는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철장문에 대해 알아보려 해도 너무 늦었다· 지금 사람을 보내 조사해도 결과가 나오려면 족히 열흘 이상 걸릴 것이다·’
그녀는 실수를 인정했다·
‘진 소협에게 온 이목을 곤두세우느라 다른 곳에 소홀했다· 이런 변수는 미리 파악했어야 하는데·’
결국은 진무원이 문제였다·
그의 등장이 가져온 여파는 아직도 서문혜령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니 운중천 전체를 흔들어놓고 있었다·
“척마대의 대주는 반드시 우리가 차지해야 해요·”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삼 초 만에 놈을 제압하겠다·”
심원의의 음성에 찐득한 살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의 살기에 창룡회의 무인들은 숨을 죽였다· 그들은 이제까지 심원의가 이렇게 분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서문혜령이 좌문호를 바라봤다·
“최소한 세 명 이상이 부대주를 차지해야 해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죠?”
“물론이오·”
서문혜령은 품안에서 조그만 책자를 꺼내 좌문호에게 건넸다·
“척마대에 든 자들의 무공 장단점을 파악한 자료예요· 다들 돌려 읽으세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고맙소!”
책자를 받아 드는 좌문호의 손등이 떨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척마대에 든 자들의 무공을 파악한 서문혜령의 기민한 정보력에 감탄보다는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척마대를 향한 그녀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진무원은 비무대를 바라봤다·
비무대 위에서는 부대주를 뽑는 대결이 벌어지고 있었다· 참석한 인원은 쉰여섯 명· 하지만 정해진 자리는 겨우 다섯 자리뿐이다· 물경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부대주에 오를 수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비무대 위의 무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싸우고 있었다· 땀방울이 비산하고 피가 튀었다· 손속에 사정이 없어 잔인한 광경이 속출했다·
조월로 인해 봉인이 풀렸다· 암묵적으로 상대를 봐줬다가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발동한 것이다·
조월은 승승장구했다· 두 명의 무인이 그에게 큰 상처를 입었다· 한 명은 사지가 부러졌고 다른 한 명은 생사지경을 헤맬 만큼 엄중한 상처를 입었다·
그야말로 잔혹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손속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척마대의 무인들은 조월과 싸우는 것을 꺼렸다· 마치 전염병처럼 그에 대한 두려움이 번져가는 것이다·
“흐흐!”
피투성이가 된 채 비무대에 누워 힘겹게 버둥거리는 무인을 내려다보며 조월이 음소를 흘렸다·
상대는 오대세가 중 하나인 진주언가(珍州彦家)의 혈족이었다· 진주언가는 특히 권공(拳功)으로 유명했는데 그 강맹함이 소림의 권과 견줘 부족함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무인은 진주언가에서도 촉망받던 기재이다· 특히 진주언가의 성명절기 중 하나인 육합벽력권(六合霹靂拳)을 극성으로 익혀 하북성의 후기지수 중에서 당할 자가 많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월은 그런 무인을 이십여 초 만에 항거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군웅들은 그런 조월에게 엄청난 환호성을 보냈다·
진무원은 비무대 끝에 오만하게 서 있는 조월을 보며 눈을 빛냈다·
‘내공의 수발이 자유로운데다가 순간의 집중력이 엄청나다·’
군웅들은 그저 조월의 압도적인 무위만 보고 환호했지만 진무원은 달랐다· 그는 조월의 보법과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월의 움직임은 형(形)이 잡힌 무공이라기보다는 짐승의 움직임에 더 가까웠다· 본능과 직관을 바탕으로 오직 최단 거리의 동선으로 상대를 공격해 무력화시켰다· 철저하게 실전에 바탕을 둔 효율적인 무공이었다·
그때 옆에서 한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저는 평생 저렇게 효율을 극대화한 무공을 본 적이 없어요·”
옆쪽을 바라보니 새하얀 장포를 입고 붉은색 화려한 요대를 걸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진무원은 단숨에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단월선자(斷月仙子) 사유하·’
흑무객 조월처럼 비무대회를 통해 혜성처럼 나타난 여인이다· 예선부터 두각을 나타내 단월선자라는 별호를 얻었고 운외사기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녀가 진무원을 보며 싱긋 웃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진 소협?”
“나를 압니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진 소협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사유하의 웃음은 매우 달콤했다· 미소를 지을 때마다 반달처럼 휘는 눈동자는 보는 이의 넋을 빼앗기 충분했다· 실제로 진무원의 근처에 있던 이들 중 몇 명은 입을 벌린 채 사유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물었잖아요· 진 소협은 흑무객 조월 소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하군요·”
“그게 전분가요?”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요?”
“진 소협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강한가 보군요· 하지만 진 소협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를 제압할 수 있겠죠?”
“글쎄요·”
“저는 진 소협이 훨씬 더 강할 거라 믿어요·”
사유하의 눈매가 더욱 부드럽게 휘었다· 그녀의 눈웃음은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사유하가 진무원을 유혹함이 분명했다·
‘북검이라면 능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사람들은 내심 수긍했다·
당장 척마대를 뽑는 대회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살짝 멀어져 있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당금 무림에서 최고로 뜨거운 인물이었다·
북천문의 정통 후인이라는 배경이 없어도 그의 무력은 실로 엄청났다· 만일 그만 영입할 수 있다면 그 문파는 단숨에 강호의 명문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유하가 접근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사 소저의 건승을 빌겠습니다·”
“고마워요· 혹시 저녁에 시간이····”
“여기 계셨군요 진 소협·”
그 순간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성숙한 분위기의 여인은 바로 당미려였다· 방해자의 등장에 사유하가 눈에 불을 켰다·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당미려가 차분한 음성으로 진무원에게 말했다·
“숙부님이 찾으세요·”
“당 대협이?”
“진선각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진무원이 사유하에게 포권을 취한 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유하는 멀어지는 진무원의 뒷모습을 잠시 망연히 바라보다가 당미려를 무서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러자 당미려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진무원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랐다·
진무원의 가슴에 다른 여인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가슴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여인이 그 자리를 파고드는 것을 그냥 두고 보는 것도 싫었다·
그녀의 뒤통수로 사유하의 무서운 시선이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