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 3장 나비의 날갯짓이 구름을 부르기도 한다 (1)
진무원은 운중천으로 들어왔다· 그를 막을 명분이 없기에 운중천의 외당무사들은 순순히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몇몇 이는 진무원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선망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진무원은 북천사주 중 한 명인 연천화를 꺾은 시대의 기린아이다· 그 무력은 젊은 무인 중 최정상에 속했고 아홉 하늘과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을 거란 소문이 돌 정도였다·
이제 운중천에서 진무원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가 강호에 던져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진무원의 곁에는 하진월과 명류산이 따르고 있었다·
“흐흐! 네놈도 이제 유명인사가 다 되었구나· 기분이 어떠냐?”
“딱히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 쓰이느냐?”
진무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진월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네놈은 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큰일을 하려면 이보다 많은 이의 주목을 받을 테니까·”
“어쨌거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군요·”
“흐흐! 유명인의 숙명이 아니더냐? 어쨌거나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말고 어깨를 당당히 펴라· 어렵게 잡은 기회니까·”
“알겠습니다·”
담담히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과 달리 명류산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연신 두 손을 비비며 주변을 돌아봤다· 그런 명류산의 모습에 하진월이 피식 웃었다·
“네놈도 긴장되는 모양이구나·”
“아 말시키지 마슈· 아주 오줌 쌀 것 같으니까·”
“흐흐!”
“아 죽겠네·”
명류산은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역시 척마대를 뽑는 비무대회에 지원했고 오늘이 첫 번째 비무를 치르는 날이었다·
그동안 명류산의 무공엔 많은 발전이 있었다· 당기문의 독은 그의 잠력과 내력을 폭발시켰고 고련을 통해 이젠 외기를 능숙하게 발출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무공엔 제법 자신이 붙었지만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그 때문에 명류산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하진월이 물었다·
“첫 상대는 누구냐?”
“무월파(武月派)의 무인이라고만 알고 있수·”
“흐음! 잘하면 첫날 떨어질 수도 있겠구나· 무월파는 권으로 유명한 문파지· 특히 그들의 독문무공인 황표십삼권(黃豹十三拳)은 강호에도 유명한 절기지· 황표십삼권에 당한 자는 아주 뼈마디가 작살이 난다더구나·”
“에이 씨! 꼭 그렇게 초를 쳐야 되겠수? 아주 재수 없는 소리만 골라 하고·”
“흐흐! 그래도 겁은 나는 모양이구나·”
“겁은 무슨?”
명류산이 큰소리를 치는 모습에 진무원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배정받은 비무대는 연무장 우측 끝에 있었다· 비무대 위에서는 두 명의 무인이 한창 대결을 펼치고 있었고 많은 이가 주위에 모여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기와 권기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 두 사람 모두 만만치 않은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다· 예전의 명류산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린단 말이지?’
명류산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것을 느꼈다·
이름을 알릴 절호의 기회이다· 척마대의 대주가 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지만 일개 대원만 되더라도 가문의 영광이고 고향인 사천 지방에서 큰소리 떵떵 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슬쩍 진무원을 훔쳐보았다·
진무원은 비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온통 신경을 빼앗긴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치잇!’
그가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가 의식되었고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소협·”
세 남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말을 건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명류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남 소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사뿐사뿐 걸어오는 여인은 바로 남수련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젊은 무인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남수련이 진무원과 하진월 등에게 포권을 취했다·
“진 소협도 나오셨군요·”
“남 소저 저번에는 감사했습니다·”
진무원이 남수련에게 포권을 취했다· 진무원은 그녀가 무산파의 명예를 걸고 변호해 준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감사하실 필요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이쪽은 제 사제예요· 사제도 경험 삼아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네요·”
남수련이 옆에 있는 젊은 무인을 가리켰다· 그러자 젊은 무인이 진무원 등에게 포권을 취했다·
“무산파의 장학진이라고 합니다· 북검 진무원 소협과 하 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아주 훤칠하구먼· 강호의 여협들이 아주 침을 흘리겠어· 흐흐!”
하진월의 너스레처럼 장학진은 훤칠한 키에 관옥 같은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명문 무산파에서 내보낸 제자답게 고강한 무공 실력을 자랑했다·
명류산이 장학진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간간이 남수련을 바라보는 그의 따듯한 시선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수련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나란 놈의 존재감이 겨우 그 정도에 불과한가?’
입맛이 씁쓸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가 지금 그의 위치였다· 강호라는 호수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그는 밑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나 마찬가지였다·
‘두고 봐라· 나도 언젠가는 수면 위로 올라갈 테니까·’
그는 이빨을 뿌득 갈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때 남수련이 명류산을 바라보았다·
“명 소협도 비무대회에 참가하신다고 들었어요· 부디 승승장구하시길 빌겠어요·”
“가 감사합니다·”
마음은 차갑게 대답하라고 하는데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남수련의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도 그의 입은 헤벌쭉 벌어졌다·
하진월이 명류산을 보며 혀를 찼다·
“끌끌! 입 좀 다물어라· 파리 들어가겠다·”
“흡!”
“그럼····”
남수련이 작별 인사를 한 후 장학진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오늘 장학진은 비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그는 무산파 장로들의 추천장을 받았기에 삼백 명의 인원이 추려지면 그때부터 비무대에 오른다·
하진월이 장학진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체력이고 내공이고 모든 것이 월등한데 그마저도 아끼고 나오니 출발점 자체가 아예 다른 셈이지·’
현재 비무대회에 출전한 이들이 본선에 오를 때쯤이면 내력이나 체력이 고갈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조그만 상처라도 입는다면 온전한 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불리한 조건을 모두 떠안고 시작하는 셈이다·
빠각!
갑자기 하진월이 명류산의 뒤통수를 쳤다· 그러자 명류산이 도끼눈을 뜨고 하진월을 노려봤다·
“아씨! 진짜····”
“정신 바짝 차려라 놈·”
“망할!”
“모든 것은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유혹도 많겠지만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제일 빠른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왠지 범상치 않게 들리는 하진월의 말에 명류산이 인상을 팍 썼다· 하지만 하진월은 이미 그를 지나쳐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저 요괴가 혹시····’
명류산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비무대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비무대 위에서 싸우던 젊은 무인 중 한 명이었다·
젊은 무인은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은 듯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잠시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비무대 위에서 참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호검문(怒虎劍門) 안오경 소협 승!”
“와아아!”
비무대 주위에 있던 군웅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승자에게 보내는 환호였다· 누구도 비무대 밑에 쓰러진 무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젊은 무인은 겨우 일어났다· 그런 그의 옆구리는 피로 불게 물들어 있었다·
“크흑!”
그의 양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간신히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허무하게 놓쳤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이름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문파의 장문제자였다· 힘이 없기에 모든 이권을 인근의 거대 세가에게 빼앗긴 젊은 무인에게는 척마대에 드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든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젊은 무인은 상처 입은 옆구리를 치료하지도 못하고 비무대를 떠났다· 진무원은 그런 젊은 무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찌 그뿐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패자가 쓸쓸히 비무대를 떠나고 있었다·
오직 승자만이 각광받을 뿐이다· 그 누구도 패자에게는 따스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렇게 패자는 잊히고 뒤안길로 사라져 갈 뿐이다· 수많은 젊은 무인이 그렇게 냉혹한 세상에서 도태되고 있었다·
진무원이 나직이 한숨을 내쉴 때 비무대 위에서 참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은 무월파의 남무석 소협과 사천에서 온 명류산 소협 차례입니다·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순간 명류산의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름이 불리자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치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는 애써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기세에서 밀릴 수는 없었다·
‘제길! 어차피 한 번 죽는 인생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반대편에서 무월파의 무인인 남무석이 올라왔다· 명류산보다 족히 두 배는 커 보이는 엄청난 덩치의 소유자였다·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근육 또한 대단해서 솥뚜껑 같은 주먹에 스치기만 해도 중상을 입을 것 같았다·
남무석이 씨익 미소를 짓는 순간 명류산은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비무대 위에 섰다·
마주 서자 남무석의 덩치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무석의 시선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비무를 주관하는 중년의 참관인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규칙은 간단하오· 상대를 죽이지 않을 것· 모두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오· 오직 승자만이 다음 비무에 참가할 자격을 얻으니까·”
“으음!”
“흐흐! 보아하니 어디 이름 없는 문파에서 한두 수 얻어 배운 모양인데 뼈마디가 부러지기 전에 포기하는 게 어떤가?”
남무석의 도발에 명류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엉아가 보기보단 손이 좀 맵거든·”
“큭! 건방은·”
남무석의 입꼬리가 뒤틀리며 눈에서 섬뜩한 광망이 흘러나왔다· 그의 살기에 명류산은 피부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뱉은 말을 거둘 수도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럼 비무를 시작하시오·”
참관인이 물러나고 비무대 위에는 남무석과 명류산만 남았다·
“아주 뼈마디를 잘근잘근 씹어주마·”
남무석이 무월파의 성명절기인 황표십삼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는 황표십삼권을 완숙한 경지까지 익혔다·
쾅!
그의 강렬한 진각에 비무대 위에 깐 청석에 금이 쩍쩍 갔다· 그에 명류산은 또다시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용케도 물러서지 않고 기수식을 취했다·
“챠핫!”
먼저 달려든 이는 남무석이었다· 거대한 몸집과 달리 그의 몸놀림은 표범처럼 날쌨다· 순식간에 명류산의 지척으로 쇄도한 그가 강렬한 일권을 날렸다·
슈왕!
표왕승목(豹王昇木) 황표십삼원의 오초식이 처음부터 펼쳐졌다· 강력한 권기가 해일처럼 명류산을 향해 밀려왔다· 예전의 명류산이었다면 감히 상대하는 것조차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진 일식이었다·
권기에 격중당하기 직전 명류산의 몸이 꿈틀거렸다· 좌측으로 일 보 다시 후방으로 일 보를 옮기자 남무석의 권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리 계산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진무원에게 하도 얻어터지다 보니 절로 몸에 밴 움직임이었다·
“어라?”
명류산이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를 향해 남무석의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명류산은 예상을 뛰어넘는 움직임으로 남무석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렇게 되자 명류산의 눈빛이 변했다·
남무석에겐 진무원과 같은 위압감도 허점을 파고드는 집요함도 없었다· 한 초식 한 초식은 강하지만 동작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진무원에겐 커다란 절망만 느꼈다면 남무석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니잖아· 씨바!’
명류산의 눈빛이 공격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