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 5장 손톱 아래 조그만 가시가 더 아프다 (3)
“뭐야? 그 인간이 왜 뇌옥에 갇혀 있어?”
명류산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동안 밀실에 처박혀 연무에만 몰두하던 그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진무원이 운중천의 뇌옥에 갇혔다는 것이다·
진무원은 그에게 넘어서야 할 벽이고 반드시 올라야 하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런 진무원이 뇌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은 명류산에게도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진무원이 북천문의 후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천성 서부 고원 출신의 촌놈이라지만 그 역시 북천문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북천문의 무인들처럼 밀야와 싸우며 위명을 쌓는 것이 그의 오랜 꿈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인간이 북천문의 정통 후계자란 말이지?”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장원을 빠져나와 동호 산책로를 걸었다·
여러 가지 상념이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씨발! 뭐야? 그러니까 사연 있는 놈이 그렇게 열심히 무공을 익힌 거네· 떠그랄! 이러면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잖아·”
명류산은 괜히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걷어차며 분풀이를 했다·
그때 그의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드니 등에 창을 메고 있는 건장한 여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천에서 온 명류산 소협 맞나요?”
“그렇소만?”
“잠시만 따라오세요·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분이 계세요·”
“뭐요?”
당돌한 여인의 말에 명류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분을 만나서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
“그놈의 장담은····”
“지금 제 말을 무시하는 건가요?”
“무시는 무슨· 그러는 소저의 이름이나 압시다·”
“벽력문의 채화영이라고 해요·”
명류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채화영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벽력문이라는 이름은 그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대문파에 속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곳이 바로 벽력문이다· 그런 벽력문에서 사자를 보내오다니 왠지 느낌이 묘했다·
“벽력문에서 나를 왜?”
“벽력문이 아니에요· 다른 분이 명 소협을 뵙고자 해요· 그분을 뵙는 게 명 소협에게 손해는 아닐 거예요· 아니 오히려 커다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채화영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명류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계집이 뭘 믿고 이리 자신만만한 거지?’
결국 명류산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채화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섰다·
“저를 따라오세요·”
명류산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채화영이 향한 곳은 동호 한쪽에 위치한 조그만 누각이었다·
누각 위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호수에서 불어온 바람이 여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채화영이 여인에게 말했다·
“언니 말씀하신 대로 명 소협을 데려왔어요·”
그제야 여인이 고개를 돌려 명류산을 바라보았다· 깊고 유현하며 신비로운 눈동자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은 바로 서문혜령이었다·
서문혜령의 모습에 명류산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제아무리 막나가는 명류산이라지만 서문혜령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서문혜령이 명류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서문세가의 서문혜령이라고 해요·”
“며 명류산입니다·”
“반가워요 명 소협· 듣던 것보다 훨씬 더 훤칠하신 분이군요·”
“고맙습니다·”
서문혜령의 기품 어린 목소리에 명류산은 자신도 모르게 공대를 했다· 진무원이나 하진월에게도 바득바득 대드는 명류산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서문혜령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품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서문이라면····”
“부족하지만 강호 동도들이 칠소천 중 일인으로 뽑아주시더군요·”
“역시 칠소천이셨군요· 어쩐지 범상치 않더라니·”
“허명일 뿐이에요·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계속 올려다보려니 고개가 아프네요·”
“아 네!”
명류산이 급히 서문혜령 앞에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자 그녀의 얼굴이 더 잘 보였다· 명류산이 또다시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면으로 본 그녀의 얼굴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코앞에서 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
명류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본 서문혜령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꼭 한번 명 소협을 뵙고 싶었어요·”
“나를 말입니까?”
“네·”
서문혜령의 대답에 명류산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뇌옥을 지키고 있던 외당무인들은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아니 이게 누구요? 무상 형님 아니오?”
“오랜만이구나·”
외당무사들이 반갑게 맞이하는 남자는 바로 소무상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같은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라고 외당무사들은 소무상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은 소무상이 추밀당의 당주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은퇴 후 운중천에서 객잔을 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상 형님이 여긴 어쩐 일이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너희가 생각나서 찾아왔다· 온 김에 이것도 주고 싶고·”
소무상이 양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를 외당무사들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객잔에서 만든 음식이다· 너희들 먹으라고 가져왔다·”
“형님·”
소무상의 말에 외당무사들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출출한 참이지만 단운강이 엄명을 내린지라 감히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구니 안에는 그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진귀한 음식과 술이 가득했다· 기름진 냄새에 그들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이거 정말 먹어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다· 그래도 여기가 내 고향 같은 곳이 아니더냐? 내가 너희를 챙기지 않으면 누굴 챙길까?”
“감사합니다 형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식기 전에 어서 먹거라·”
“예!”
외당무사들이 급히 바구니에 든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소무상이 문득 말했다·
“여기 오니 옛 생각이 나는구나· 내 잠시 둘러봐도 되겠느냐?”
“마음껏 둘러보십시오 형님·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고맙다· 내 천천히 둘러볼 테니 너희도 천천히 먹거라·”
“예 형님·”
소무상은 음식을 먹는 무사들을 뒤로하고 외당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때 뇌옥으로 들어갔다·
뇌옥 안을 걷는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둠의 통로를 걸어 마침내 끝자락에 도달했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어둠과 동화된 듯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남자가·
칠 년 전 보았을 때의 애티는 사라지고 이제는 선이 굵은 호남형의 얼굴로 변했지만 소무상은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주··· 군·”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의지를 배반하고 떨려 나왔다· 그의 목소리에 진무원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 어떤 신광도 보이지 않는 평범한 눈빛을 보는 순간 소무상은 전율했다· 그가 철창을 잡으며 소리쳤다·
“주군!”
“무상 형님·”
“주군! 크흐흐!”
소무상이 철창을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격앙된 감정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칠 년 만의 조우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소무상은 단 하루도 진무원을 잊은 적이 없었다· 몸은 운중천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늘 진무원과 함께했다·
그의 뺨을 따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느새 진무원의 눈시울도 그와 마찬가지로 붉게 물들었다·
진무원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그동안 주군의 소식은 듣고 있었습니다만 운중천에 매어 있는 몸이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훤칠해지셨습니다· 이젠 어엿한 사내대장부가 되셨군요·”
소무상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진무원에 관한 소식은 빠짐없이 챙겨 들었지만 그가 뇌옥에 갇힌 것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어젯밤 의문의 손님이 찾아와 진무원이 뇌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에게 소식을 전한 이는 바로 흑월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주군이 왜 뇌옥에 들어와 계십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주군 때문에 운중천은 난리가 났습니다· 수뇌부들과 강호 명숙들이 한데 모여 대책을 논의하느라 척마대를 뽑는 행사는 뒤로 밀렸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혹시 일부러 정체를 드러내신 겁니까?”
진무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무상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당장은 은인자중해야 할 때인데·”
“천하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굳이 제 정체를 숨긴 채 운중천에 입성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삼뇌수사 하진월을 말하시는 겁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주군에 관한 소식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서문혜령이 극도로 경계하는 인물이더군요·”
“제가 없을 때는 그를 찾아가 의논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주군·”
소무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뇌옥 안에 갇힌 진무원의 무력을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이젠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했지만 진무원의 모든 것은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칠 년 전에도 그의 경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인지 추측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기꺼웠다·
‘주군은 거목이 되었구나·’
칠 년 전 그의 안목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외모는 많이 변했지만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대해를 담은 듯 깊은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가 선택한 자의 명성은 이제 강호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하나 소무상은 이제 겨우 시작임을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 강호를 질타할 생각을 하니 온몸이 쩌릿쩌릿해지고 피가 들끓었다·
자연스럽게 개방된 기파를 진무원은 놓치지 않았다·
“많은 성취가 있으셨군요?”
“부끄럽습니다· 이제야 겨우 청운검법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칠 년 동안 남들은 삼류 무공이라고 폄하하는 청운검법에 매달렸다· 그리고 남모를 성취를 얻었다·
진무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선택한 첫 번째 검은 모진 단련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했다· 그 성취가 범상치 않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주군의 곁에 있겠습니다·”
“저와 함께하면 오직 험로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길을 함께 가기 위해 이제껏 무공을 익혀왔습니다· 힘들거나 고되다고 결코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무상 형님·”
소무상이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소무상 주군의 첫 번째 검으로 당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겠습니다! 언제든 명만 내려주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뇌옥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