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 7장 죽음은 결코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2)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로 일원을 바라보았다· 심지어는 화산파의 제자들마저도 눈빛이 변했다·
궁지에 몰린 일원이 필사적으로 변명하려 했다·
“사형 사숙 저자의 말을 믿습니까? 저는 정말 결백합니다!”
“하면 네 몸에서 흘러나오는 그 주향은 어찌 된 것이냐?”
“그건····”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칠성 진인의 노성이 갑판 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에 갑판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양 귀를 막고 비틀거렸다·
“제길!”
종잇장처럼 얼굴이 구겨진 일원이 갑자기 몸을 날렸다· 설마 그가 도주할 줄은 예상치 못한 화산파의 제자들이 뒤늦게 따라잡으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일원의 신형이 거의 갑판을 벗어난 이후였다·
일원의 눈에 푸른 강물이 들어왔다· 이제 강물로 뛰어들기만 하면 화산파에서는 그를 추적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환상처럼 누군가 나타났다·
“으득!”
일원이 이를 갈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그 때문에 창운을 죽인 것이 들통 났고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기에 일원의 원한은 엄청났다·
일원이 섬전 같은 속도로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진무원의 예상대로 좌수검(左手劍)이었다·
쐐액!
일원의 검이 진무원의 목젖을 노리고 쏘아져 왔다·
캉!
하지만 그의 검은 쇳소리와 함께 진무원의 지척에서 막혔다· 진무원이 검집째 휘둘러 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엄청난 반진력에 그의 내부가 찌르르 울리며 몸이 휘청거렸다· 그런 그의 복부를 진무원의 발이 강타했다·
“컥!”
일원이 비명과 함께 갑판으로 튕겨져 나갔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갑판에 처박힌 일원의 몸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일원을 포위하자 칠성 진인이 앞으로 나섰다·
“왜 그런 것이냐? 왜 창운을 죽인 것이냐?”
“크흐!”
“일원아·”
칠성 진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이대제자라서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아는 일원은 착하고 선량한 아이였다· 마음이 여려서 사람을 해치기는커녕 스스로를 보호할 수나 있을까 싶어 늘 걱정했다·
그런 일원이 창운을 해치다니· 그것도 천변음마의 백록산까지 구해서·
일원이 몸을 일으켜 칠성 진인을 바라봤다·
“사숙조 죄송합니다·”
“제발 거짓이라고 말하거라! 네가 뭐가 부족해서····”
“저는 끝까지 화산의 제자이고 싶었습니다· 그것 하나만은 기억해 주십시오 사숙조·”
“일원아·”
칠성 진인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일원이 창운을 죽였다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일원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진무원이 소리치며 일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막아야 합니다·”
“무슨 짓인가?”
진무원이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한 칠성 진인이 진무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칠성 진인을 상하게 할 수 없기에 진무원은 방향을 살짝 바꿔 뒤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산파의 제자들이 그를 막아섰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일원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칠성 진인이 뒤를 돌아봤다·
일원의 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스스로 내공을 역류시켜 심맥을 파괴한 것이다·
“일원아 무슨 짓이냐?”
“사··· 숙조 죄송····”
“크윽!”
칠성 진인이 눈물을 흘렸다·
졸지에 제자 두 명을 잃게 된 그의 상실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슬픔에 그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마침내 일원의 숨이 끊어졌다· 그에 진무원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칠성 진인과 화산파 제자들이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일원의 자결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칠성 진인과 화산파 제자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침통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칠성 진인은 입을 다문 채 일원의 시신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수많은 상념이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상념들은 상상의 가지를 무한히 뻗어 나갔고 결국에는 이 사태의 원인에 생각이 미쳤다·
“누구냐 감히 이 아이에게 이런 짓을 사주한 이가?”
그는 일원이 혼자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원은 고아 출신이다· 천애고아로 떠돌던 그를 화산파로 데려온 것이 열 살 때의 일이다· 그 이후 십 몇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화산파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외부와의 접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심경이 변해 사숙인 창운을 암살했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문득 그의 시선이 진무원에게 멈췄다·
‘창운이 저놈을 만나면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됐다·’
갑자기 가슴속의 화가 들끓어 올랐다· 뜨거운 열기가 머릿속으로 치밀어 올라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도대체 창운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이냐? 도대체 창운이 왜 목숨을 잃어야 했단 말이냐?”
“진인?”
“말을 하거라! 창운이 무슨 말을 했느냐? 그가 왜 죽어야 했느냐?”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을 뿐·”
“거짓말하지 말거라!”
후웅!
내공이 실린 외침에 공기가 공명을 일으켰다·
내공이 없는 당기문과 하진월 등의 안색이 변했다· 그에 당미려와 남수련이 나서서 그들을 보호했다·
“말하거라! 창운이 무슨 말을 했느냐? 그가 왜 죽임을 당해야 했느냐?”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단 한 순간의 인연이지만 제가 본 그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올곧은 사람이었습니다· 일원이란 도사가 그를 왜 암살했는지 저 역시 궁금합니다·”
“하면 창운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나는 네놈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칠성 진인의 기파가 갑판 위를 휩쓸었다·
구대문파의 하나인 화산파의 장로가 작심을 하고 일으킨 기세이다· 그 막강한 기세에 갑판 위의 경물이 일제히 공명을 일으켰다·
“이보게 칠성! 이성을 찾게! 그는 자네의 적이 아니네!”
보다 못한 당기문이 소리쳤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칠성 진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진월이 당기문의 팔을 잡아끌었다·
“소용없습니다· 그에게는 지금 이 사태의 책임을 물을 희생양이 필요할 뿐입니다·”
칠성 진인의 눈에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진월이 침음성을 흘렸다·
‘심마(心魔)다·’
무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심마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것이다·
“우와악!”
갑자기 칠성 진인이 괴성을 지르며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등 뒤에서 화산파의 제자들이 그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그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진무원뿐이었다·
쉬가악!
칠성 진인의 검이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진무원을 향해 날아왔다· 진무원은 칠성 진인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캉! 카캉!
검집과 칠성 진인의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칠성 진인의 검이 허공에 매화를 그려냈다· 화산파의 절학인 삼십이수매화절검(三十二手梅花絶劍) 일명 매화검이었다· 대성하면 서른두 송이의 매화를 피워낼 수 있지만 현재 칠성 진인은 열여덟 송이가 한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갑판 전체를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갑판 위의 모든 사람이 매화검의 권역에 들었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자칫하면 수많은 사상자가 생길 수 있었다·
스릉!
진무원이 설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그의 기도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크윽!”
그의 막강한 기도를 이기지 못한 화산파의 제자들이 분분히 뒤로 물러났다·
휘류류!
진무원의 검이 허공을 뒤덮은 매화를 그었다·
허공 가득 수놓았던 열여덟 송이의 매화가 하나둘 소멸되기 시작했다·
“저럴 수가?”
화산파의 무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무원은 너무나 쉽게 칠성 진인의 매화검을 파훼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심마에 들었다고는 하나 화산파의 장로가 펼친 매화검이다· 결코 저렇게 쉽게 해소시킬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크으!”
심마에 들어 이성을 잃은 칠성 진인이 연달아 매화검의 절초를 펼쳐냈다· 매화침향(梅花沈香) 매화부동(梅花不動)의 초식이 진무원을 향해 펼쳐졌다·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매화검은 화산파 수백 년의 정수가 담긴 절학이다· 익힌 자는 많아도 완성한 자는 거의 없는 극고의 절학이었다· 열두 송이의 매화만 피워낼 수 있어도 강호에서 일류고수 행세를 할 수 있고 열다섯 송이 이상만 피워내도 절정고수 대접을 받는다·
하물며 상대는 열여덟 송이의 매화를 피워내었다· 이미 초절정을 넘어선 것이 분명했다·
비록 심마에 들었어도 매화검의 위력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상승한 것 같았다·
설화를 잡은 진무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무원은 칠성 진인의 권역으로 몸을 날렸다·
카카캉!
그와 칠성 진인 사이에서 불똥이 튀며 검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그나마 진무원이 칠성 진인의 공세를 최대한 억눌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갑판에 있는 수많은 이가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칠성 진인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힘의 조절도 내공의 분배도 없었다·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우웅!
그의 검이 울음을 터뜨렸다·
거칠고 광포한 바람이 진무원을 향해 몰아쳤다· 진무원은 자신에게 불어오는 바람의 맥을 끊었다· 그에 칠성 진인이 더 광분해 검을 휘둘렀다·
수많은 매화 송이가 피어났다가 다시 진무원의 손에 졌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매화 송이·
칠성 진인은 점점 지쳐갔다· 막강한 내공의 소유자였지만 무작정 내력을 발산하다 보니 점점 고갈되어 가는 것이다·
진무원은 칠성 진인의 수준으로 내력을 조절했다· 칠성 진인의 전력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그 결과 칠성 진인은 자신이 약해진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내력을 발산했다·
그렇게 한식경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칠성 진인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했다·
“사숙!”
“사숙조!”
이제껏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켜만 보던 화산파의 제자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창궁이 칠성 진인을 안아 들며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적개심이 한결 누르러져 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진무원이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는 사실을·
한편으로는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칠성 진인 정도의 고수가 심마에 빠졌다· 상처 없이 제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적어도 창궁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진무원은 불가능을 극복했다·
가슴속에 쌓인 화를 내공과 함께 모조리 배출했다· 적어도 다시 화에 잠식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소진된 내공이야 운공 몇 번이면 회복할 것이고·
진무원은 그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고수였다· 그로서는 감히 수준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창궁이 진무원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가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