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 2장 북에서 온 검호(劍豪) (1)
콰직!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붉은 갑주를 입은 무인의 가슴이 움푹 함몰됐다· 함몰된 그의 가슴에는 커다란 용린도가 박혀 있었다·
“흥!”
용무성이 코웃음을 치며 붉은 갑주 무인의 가슴에 박힌 용린도를 뽑아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용린도의 무게는 오십 근이 넘는다· 일반적인 무인들이 사용하는 무기의 몇 배를 상회하는 엄청난 중병이었다· 그런 중병기의 이점에 내력을 한껏 주입한 후에야 붉은 갑주의 무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파괴력이 아니고서는 붉은 갑주의 무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용무성이니까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 외의 다른 무인들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백룡상단의 무인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오직 철기당의 무인들만이 제대로 상대할 뿐이었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십여 년이 넘는 세월 거친 강호를 전전했지만 그 어디서도 이런 무인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큭! 정말 골치 아픈 일에 엮인 것 같군·”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신뢰가 생명인 철기당이다· 의뢰를 중도에 포기한다면 그들이 입는 타격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할 것이고 재기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본 붉은 갑주 무인 다섯 명이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세에 안구가 다 따끔거렸다·
평범한 절기로는 놈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쳇! 결국 밑천을 까게 만드는구만·”
용무성이 투덜거리며 용린도를 잡은 손에 공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용린도의 검신이 붉게 빛났다·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유난히 하얀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용린도가 달려드는 붉은 갑주의 무인들을 향했다·
“네놈들 말이야 결코 편하게 죽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의 용린도가 맹수의 발톱처럼 허공을 할퀴었다·
쿠오오!
붉은 바람이 천지를 휩쓸었다· 그 거칠고 광포한 바람에 붉은 갑주의 무인들이 휩쓸렸다·
무인들이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순식간에 그들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 순간 용무성의 용린도가 붉은빛을 뿜었다·
“크악!”
푸화학!
영혼을 긁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비가 내렸다· 후두둑 쏟아지는 피비 속에는 붉은 갑주의 무인들 것으로 짐작되는 살점이 섞여 있었다·
용린마형도(龍鱗魔形刀)·
마치 수십 마리의 맹수가 물어뜯은 것처럼 잔해만을 남겨놓기에 일찍이 익히는 것조차 금기시된 마공이 바로 용린마형도였다· 용무성이 숨겨놓은 비장의 한 수이기도 했다·
너무나 잔혹한 용린마형도의 위력에 질렸는지 붉은 갑주의 무인들이 주춤거렸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붉은 갑주의 무인들이 갑자기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용무성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별것도 아닌 것들이····”
그는 붉은 갑주의 무인들이 자신에게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붉은 갑주 무인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붙어 있던 붉은 갑주의 무인들 역시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응?”
붉은 갑주의 무인들과 힘겹게 싸우던 철기당과 백룡상단의 무인들이 영문을 모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두 눈을 크게 치떴다·
쿠콰가각!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싸움이 그들의 지척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진무원과 남군위·
두 사람의 격전에 주위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에 주위에 있던 몇몇 이가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쉬각!
진무원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무인들은 마치 자신이 베이는 것 같은 착각에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
몇몇 무인은 곧 눈을 떴지만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질식할 것 같은 정적이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종리무환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그의 얼굴엔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방천화극으로 극강을 만들어내 흩뿌리는 남군위의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그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진무원의 모습이었다·
그는 검기를 흩뿌리지도 않았고 검강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소름 끼치는 예기가 그들의 가슴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
가슴이 진탕돼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칠교검사 공손창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 역시 검의 극의를 추구하는 검객이었다· 그와 같이 검을 익히는 검객에겐 검강은 그야말로 꿈의 경지였다·
강기(罡氣)는 같은 오직 같은 강기로만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었고 공손창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검강을 만들 수 있는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진무원의 싸움은 그의 상식과 믿음을 근원부터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다·
“어떻게····”
악문 그의 입술 사이로 선혈이 흘러나왔다·
철기당의 다른 무인들이 그런 공손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들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공손창만큼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자신의 검에 대한 자부심이 큰 공손창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 그가 느끼는 좌절감과 절망이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채약란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무원·’
그 이름 석 자가 철기당에게 이렇게 거대한 충격과 후폭풍을 안겨줄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부터 강호는 온통 저 남자의 이름으로 위진하겠구나·”
철기당의 무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군위의 표정이 굳었다·
회심의 일격으로 날린 화룡염멸(火龍炎滅)의 초식을 진무원은 몸을 몇 번 흔드는 것만으로 가볍게 피해냈다·
‘이건 마치 실체가 없는 그림자 같지 않은가? 천하에 이런 자가 존재하다니·’
방천화극을 꼬나 쥔 남군위의 손등에 굵은 힘줄이 지렁이처럼 툭툭 불거져 나왔다·
그의 입술이 뒤틀렸다·
변수의 등장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절대 변수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도 이런 자가 있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군위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중 가장 머리가 똑똑하며 주먹만 한 머릿속에 천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자· 광오하기 짝이 없는 남군위조차 그에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진무원의 등장을 예상치 못했다·
‘어디서 이런 자가 나타난 거지?’
남군위가 이끄는 붉은 갑주의 무인들을 일컬어 적귀병단(赤鬼兵團)이라고 부른다· 그들을 키워내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다·
적귀병단과 같은 무인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도 어마어마한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는데 진무원과 같은 수준의 무인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리 없었다·
‘운중천?’
남군위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운중천의 동향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그다· 아마 운중천에 있는 자들보다 더 자세히 내부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운중천은 분명 천하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단체였다· 개개인의 역량은 물론이고 단체로서의 역량도 감히 따라올 곳이 없었다· 하지만 단체의 힘과 개인의 역랑은 분명히 다른 문제였다·
남군위의 두 눈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지금 놈을 죽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이다·’
개인이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간혹 상식을 뒤엎는 존재가 나타나곤 했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며 세상의 흐름을 바꿔 역사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격랑의 소용돌이로 이끌었다·
극적인 변화가 모두에게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미 기존의 질서를 공고히 지배하고 있는 자들에겐 진무원과 같은 변수는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남군위가 속한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꿈꾸지만 진무원처럼 통제할 수 없는 자는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우웅!
남군위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그가 뿜어낸 기파는 폭풍이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쿠콰카각!
그의 방천화극이 벼락이 되어 진무원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의 혼신의 공력이 담겨 있는 공격이었다· 주위의 대기가 공명하며 일렁이는 것이 마치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것 같았다·
극강을 휘두르는 남군위의 공격에 맞서는 진무원의 모습은 마치 폭풍에 휩쓸린 일엽편주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거센 바람이 분다 해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대가 밀어붙이면 물러나고 상대가 물러나면 그만큼 다가간다·
관건은 상대의 호흡을 얼마나 정확히 읽느냐는 것이다·
눈빛 근육의 움직임 등은 속일 수 있지만 호흡은 속일 수 없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응해야 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목숨이 걸린 생사결에서 상대의 호흡을 읽고 반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가공할 위력의 극강을 휘두르고 있다·
제아무리 철심간담을 지닌 자라도 극강이 코앞을 스쳐 가는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적과 자신의 역량을 냉철히 판단하고 적의 간격을 완전히 꿰뚫어 보았을 때나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진무원 역시 전방위 감각을 익히지 않았다면 감히 이런 지근거리의 공방전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남군위와의 싸움을 통해 자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있었다· 싸우면서 스스로를 보완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멸천마영검의 무서운 점이었다·
남군위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극강의 남발로 인한 극심한 기의 소모가 체력의 저하를 불러온 것이다· 진무원에게 말려 본인의 호흡을 잃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놈에게 말렸다가는 반격할 기회마저 잃고 말 것이다· 이곳에서 승부를 본다·’
설마 자신이 이런 운남성의 오지에서 악몽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놈! 끝을 보자!”
순간 붉은 강기가 그의 방천화극을 휘감아 돌았다·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 용이 똬리를 튼 것 같았다·
광룡비천(狂龍飛天)·
남군위가 익힌 최강의 초식이다· 그는 이 한 수에 남아 있는 모든 공력을 주입했다·
마치 시위를 당긴 활처럼 남군위의 등이 한껏 뒤로 젖혀졌다· 그 모습에 진무원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본능적으로 남군위의 공격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진무원이 설화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에 반응이라도 하듯 설화가 공명했다·
남군위의 방천화극이 진무원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 설화가 허공을 갈랐다·
멸천마영검(滅天魔影劍) 제삼식 단천해(斷天海)·
쐐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