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6장 철기당주(鐵技黨主) 용무성 (1)
“헤헤!”
공방을 나온 곽문정이 검을 품에 안은 채 연신 웃음 지었다·
“그렇게 좋으냐?”
“네!”
이제까지 사용하던 싸구려 철검이 아닌 처음으로 갖게 된 제대로 된 검이다· 곽문정은 중검에 적아(赤牙)란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은은한 붉은색 검신이 붉은 이빨을 연상케 한 때문이라고 한다·
“적아 좋은 이름이다·”
“그죠? 헤헤!”
“좋은 검을 얻었으니 너도 검에 부끄럽지 않은 무인이 되어야 한다·”
“저 정말 열심히 무공을 익힐게요· 형의 도움에 정말 감사드려요· 지금은 이렇게 말로밖에 보답할 수 없지만 나중엔 정말 형의 한 팔이 될 수 있게 노력할게요·”
“말이라도 고맙구나·”
곽문정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비록 어리긴 하지만 그는 진무원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배려와 도움을 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은혜를 받고서도 배반한다면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함께 진흥객잔으로 돌아왔다·
객잔 안에 들어서자 공진성과 유서인 그리고 철기당의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진무원과 곽문정에게 집중됐다·
진무원의 눈이 빛났다· 철기당의 무인들 사이에 그가 모르는 얼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종리무환이 진무원을 보며 미간을 슬며시 찌푸릴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한이 있었다·
붉은 전포를 입은 칠 척 거구의 남자 사방으로 뻗친 머리카락과 굵직굵직한 이목구비가 마치 커다란 수사자 같았다· 등에 거대한 용린도를 메고 허리에는 어른 팔뚝만큼이나 굵은 육각 단봉을 차고 있어 무척이나 위맹해 보였다·
그가 양팔을 벌리며 진무원에게 다가왔다·
“으하하! 자네가 진무원인가?”
“그렇습니다만····”
“나는 용무성이라고 하네·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구만· 으하하하!”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거한의 남자는 바로 철기당의 당주인 용무성이었다·
진무원이 포권을 취했다·
“진무원이라고 합니다 용 당주님·”
“성격이 아주 지랄 같다며? 우리 부당주가 아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구만· 으하하!”
용무성이 진무원의 어깨를 두들기며 연신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한 번씩 어깨를 두들길 때마다 몸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제법 아팠지만 진무원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당주!”
“왜?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보다 못한 종리무환이 소리를 빽 소리를 질렀지만 용무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무원에게 말했다·
“자 이리 앉게·”
“요 용 당주?”
그런 용무성의 모습에 공진성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용무성은 막무가내로 진무원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아! 뭐 어떻소? 이 친구 숙부도 실종되었다면서요? 그렇다면 이 친구도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하지·”
“용 당주 아무리 그래도····”
“거기다 무력도 끝내준다며? 우리 사소한 문제는 다 잊읍시다· 전력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시점이니까·”
“끄응! 알겠소이다·”
용무성의 거침없는 말에 결국 공진성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모습에 종리무환과 채약란 등이 고개를 흔들었다·
용무성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만사를 즉흥적이고 제멋대로 처리했다· 그 때문에 항상 죽어나는 것은 그들이었다· 하지만 용무성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기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이상과는 맞지 않으나 진무원은 소중한 전력이 분명했다· 그 정도의 무력을 가진 자는 강호에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눈치를 보던 곽문정이 인사를 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낄 만한 자리가 아님을 눈치챈 것이다·
용무성이 낯선 인물들을 소개해 줬다·
“나머지는 먼저 봤으니 다 알 테고 다른 이들을 소개해 주지· 이 친구는 적각귀(赤脚鬼)라고 하네· 십 년 전 싸움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고 의족으로 대신하고 있지·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네· 으하하!”
오 척 단구에 한쪽 다리는 붉은 의족인 사내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적각귀라고 부르게·”
용무성이 나머지 사람들을 소개했다·
“저기에 앉아 있는 얼굴이 반반한 친구를 조심하게· 여자 후리는 데는 아주 도사니까· 그 친구 이름은 만서진이라고 하네·”
소개 받은 잘생긴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진무원은 그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용무성이 마지막 남자를 소개했다· 그는 무척 비쩍 마른데다 눈꼬리마저 날카로워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이 친구의 이름은 지성율이라고 하네· 보다시피 성질이 더러운데다가 무척이나 꼬장꼬장하지· 그러니 자네도 조심하게· 뒤통수에다가 암기를 날릴지도 모르니까·”
용무성의 소개에도 지성율은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그저 예리한 시선으로 진무원을 살필 뿐이었다·
진무원이 그들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진무원이라고 합니다·”
“자! 서로 소개도 끝났으니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합시다·”
용무성의 말에 공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 현재 운남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점창파(點蒼派)를 제외하면 변변한 문파 하나 없던 곳이 운남이지만 이젠 상황이 변했습니다· 바로 패권회가 운남에 둥지를 튼 것이지요·”
패권회는 급속히 세력을 불려나가고 있고 필연적으로 점창파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운중천이 그들의 싸움을 중재해야 옳았지만 어쩐 일인지 운중천은 운남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관했다·
결국 그들의 충돌은 운남성 곳곳에서 일어나는 형편이고 중소 문파들에게까지 그 불똥이 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때문에 운남성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운남성을 찾은 상단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었다· 백룡상단뿐 아니라 일월상단(日月商團) 대륙상단(大陸商團)에서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일월상단이나 대륙상단 모두 십대상단에 속해 있다·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다른 상단들이 운남성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있고 그 때문에 운남성 내의 돈줄이 씨가 말랐답니다·”
용무성이 손을 턱에 궤며 중얼거렸다·
“흠! 누군가 의도적으로 운남성 내에 자금이 도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인가?”
“점창파나 패권회 모두 의심이 갑니다만 자세한 사정은 운남성에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제삼의 세력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혼탁하구만· 아주 지랄 같은 의뢰를 맡아왔군 부당주·”
용무성의 시선이 종리무환을 향했다· 그러자 종리무환이 피식 웃었다·
“지랄 같아도 어차피 맡을 거잖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용무성이 머리를 북북 긁었다·
원래 철기당은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위험한 의뢰는 철저히 배제했다· 아무리 돈이 중하다 할지라도 목숨보다 소중하지는 않다는 용무성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철기당의 사정이 바뀌어 당장 거금이 필요했다· 백룡상단보다 거액을 줄 의뢰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결국은 이 의뢰를 맡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묵묵히 듣고만 있던 진무원이 입을 열었다·
“제 숙부가 사라진 곳을 대충 알 수 있겠습니까?”
공진성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알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네· 현재 운남성은 복마전이나 다름없어서 안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걸세·”
“자세한 사정은 오직 운남성 안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다네·”
공진성의 대답에 진무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용무성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 그럴 줄 알고 우리 사람 하나를 미리 그쪽으로 보내놨으니까· 아마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제법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을 거야·”
“어째 추개가 안 보인다 했더니 당주가 벌써 보내신 모양이군요·”
“흐흐! 있어 봐야 어차피 싸움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놈이지 않은가? 그러니 먼저 운남성에 들어가 정보나 모으고 있으라고 했지·”
“잘하셨습니다 당주·”
종리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용무성은 철기당의 당주이다· 철기당 십여 명의 무인이 모두 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추개(追丐)는 거지였다· 본인 말로는 개방 출신이라고 하는데 그다지 믿음이 가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보를 얻는 데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철기당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제대로 분석할 만한 정보가 없는 이상 어차피 이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은 뻔하겠군· 으갸갸갸!”
용무성이 기지개를 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주 아직 회의가 안 끝났는데····”
“회의는 부당주가 알아서 하라고· 어차피 나 없어도 잘해왔잖아?”
“하지만····”
“에이! 내가 빠져주는 게 더 좋잖아· 나한텐 결과만 통보하라고· 사정은 다 알았으니 나도 나름 생각해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종리무환이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늘 있는 일이라 새삼스럽게 생각하진 않았다·
문득 용무성이 진무원을 바라봤다·
“자네도 계속 거기 있을 셈인가? 같이 바람이나 쐬자구·”
용무성이 씨익 웃었다·
***
진무원과 용무성은 저잣거리로 나왔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것인가?’
진무원은 그럴 거라 생각했다·
보통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는 사람들의 경우 걸음걸이가 어지럽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용무성은 곁눈질도 하지 않고 무엇보다 어느 한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득 용무성이 입을 열었다·
“왜 묻지 않는가?”
“무얼 말입니까?”
“어디로 가는지 왜 자네만 따로 불러냈는지 말일세·”
“시간이 되면 알게 되겠죠· 굳이 물어볼 것까지야·”
“그런가? 역시 지랄 같군·”
“제 성격이 말입니까?”
“그래 우리 부당주가 꺼릴 만해·”
진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종리무환이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책사일세· 머리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일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지· 그러다 보니 사람을 수십 가지 부류로 나눠놓고 그를 바탕으로 계산하지· 한데 자네는 그가 분류한 사람들에 속하지 않아· 그래서 녀석이 당혹스러워하는 거야·”
보통 머리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자신이 예측하기 힘든 변수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힘들게 짜놓은 판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존재를 본능적으로 멀리하는 것이다· 종리무환도 그 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겁니까?”
“하하! 자네가 왜? 난 재밌기만 하구만·”
“당주님의 부하잖습니까?”
“다 좋은데 말이야 그 녀석은 너무 재미가 없거든· 클클!”
용무성이 킥킥대며 웃는 모습을 보며 진무원도 미소를 지었다·
용무성은 그 후로도 한참을 종리무환을 헐뜯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서로에 대한 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하여간 그 고리타분한 녀석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살아요· 걸핏하면 제동이나 걸고 말이야· 그래도 내가 지 당준데 대접은 해줘야 할 거 아냐·”
“아주 나쁜 인간이군요· 그렇게 위아래를 모르는 싸갈 바가지 없는 인간은 아주 능지처참을 해야 하는데·”
“아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윗사람에 대한 공경이 없으면 그게 개지 사람입니까?”
“뭐 그렇긴 한데····”
“다음에도 그러면 아예 무릎 뼈를 박살 내서 평생을 기어 다니게 하십시오· 그래야 윗사람에 대한 공경심도 생기지요·”
“꼭 그렇게 할 필요 있겠는가? 뭐 싸가지야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 거고 공경이 없는 거야 교육시키면 되는 거고 에····”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군요·”
“쩝! 그렇게 되나? 자네도 보는 것과 다르게 입심이 대단하군· 으하하! 마음에 들어·”
“이야기가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아무려면 어떤가? 내 마음에만 들면 되는 거지·”
용무성의 화법은 매우 독특해서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오늘 진무원을 처음 보는 것임에도 거리낌 없이 대하는 것에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용무성은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저잣거리 한쪽의 한적한 골목길이었다·
“여긴?”
“하하! 걱정하지 말게· 자네를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잡아먹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까?”
“그거야 한번 주먹을 맞대보면 알 수 있겠지·”
용무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진무원은 그런 용무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허공에서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다·
불길 같은 용무성의 눈빛과 담담하기 그지없는 진무원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먼저 시선을 피한 이는 용무성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뭡니까?”
“바로 정보를 얻는 것이지·”
“정보?”
“운남성에 관한 정보 말일세·”
“아까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아까까지는 그랬지·”
용무성의 말에 진무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용무성이 득의 어린 미소를 지었다·
용무성이 갑자기 골목 한쪽에 멈춰 섰다·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일반 가옥 앞이다·
쿵쿵!
그가 커다란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