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3장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1)
종리무환 등이 진무원의 옆 탁자에 앉았다· 그러자 곽문정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종리무환 등을 바라보는 그의 눈엔 선망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 녀석·’
아마도 철기당의 무용담에 단단히 도취된 모양이다·
진무원의 시선이 곽문정과 반대편 탁자에 앉은 자들을 향했다· 곽문정 또래의 소년 한 명과 도사복장을 한 중년의 남자 둘이었다·
그때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동파의 도사들이군요· 그들은 소매에 항상 청죽 문양을 새겨 넣지요· 들리는 말로는 청죽만큼 꼿꼿한 기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더군요·”
고개를 돌리니 종리무환이 진무원을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아마 저 소년은 꽤나 높은 신분일 겁니다· 공동파에서는 어린 제자들을 결코 밖으로 내보내지 않거든요· 무공이 일정 이상 수준에 오르거나 혹은 일대제자 이상이 되어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럼 저 소년은 일대제자이거나 무공이 꽤 고강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저 어린 나이에 일대제자가 되었다면 그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란 뜻입니다·”
“그렇군요·”
진무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종리무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소년은 꽤나 좋은 근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상이 사뭇 사나워 보이는 것이 꽤나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곽문정도 진무원처럼 공동파의 도사들을 바라보았다·
진무원이 물었다·
“부럽느냐?”
“아니요· 전혀·”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었기에 진무원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부럽지 않아? 일대제자라면 뛰어난 무공을 전수받을 텐데·”
“전 보표니까요·”
“응?”
“아버지가 그랬어요· 비록 대가를 받아 생활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타인의 목숨과 소중한 물건을 지키는 일을 한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칼날 위의 목숨일지언정 남들을 갈취하거나 더러운 방법으로 살아가지는 않으니 남아로 태어나 이보다 더 멋진 직업이 어딨냐고 하셨죠·”
보표이던 아비 곽이수를 보며 꿈을 키운 곽문정이다·
이 년 전 백룡상단이 장강 상행에 나섰을 때 수적들이 습격해 왔다· 배를 타고 있는지라 도주할 수도 없었다·
그때 곽이수는 끝까지 홀로 남아 수적들에게 대항하며 일꾼들을 탈출시키고 장렬히 전사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곽이수는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을 지킨 곽이수 그는 그야말로 당당한 보표였다·
곽문정의 목표는 곽이수였다· 아비 곽이수처럼 당당한 보표로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꿈이었다·
진무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멋있는 아버님이구나·”
“헤헤!”
곽문정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근처에 있던 임진엽이 그의 말을 듣고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 소형제는 당당한 장부군· 내가 술을 한잔 사지· 사양하지 말게·”
“지금은 근무 중이라서요·”
“그렇군· 자네는 보표지· 그럼 저녁에 사지· 꼭 내 거처로 찾아오게나·”
“네!”
곽문정이 힘차게 대답했다·
덕분에 장내의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철기당의 무인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곽문정을 바라봤다·
그때 주문을 받은 소녀가 쟁반을 들고 뒤뚱뒤뚱 걸어왔다· 소녀가 진무원의 탁자에 쟁반에 담긴 음식을 내려놓았다·
“남해객잔의 명품 돼지볶음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풋!”
곽문정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소녀가 아미를 상큼 치켜 올리며 곽문정을 노려봤다·
곽문정의 얼굴이 붉어지며 급히 사과했다·
“미 미안!”
“우리 아빠가 만든 돼지고기볶음이에요· 맛없으면 돈 안 받을게요·”
“그런 뜻으로 웃은 게 아니라··· 미안해·”
곽문정이 어쩔 줄 모르고 고개만 긁적였다· 그러자 소녀가 활짝 웃었다·
“모르고 그런 거니 이번엔 용서해 줄게요·”
“고 고마워!”
“내 이름은 소령이에요· 함소령· 오빠 이름은요?”
“내 이름은 곽문정이야·”
“그런데 오빠도 보표예요?”
“으 응!”
“멋있다· 헤헤!”
소녀의 칭찬에 곽문정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이야! 소형제 축하하네· 저런 미인이 관심을 보이다니· 몇 년만 지나면 수많은 남자의 가슴을 뛰게 할 미색인데 진심으로 소형제가 부럽군·”
임진엽이 너스레를 떨자 곽문정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반면 함소령은 태연히 미소를 지으며 곽문정을 바라봤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도 보통이 아니구나·’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보통 당차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보표긴 한데 아직 그냥····”
곽문정이 말을 더듬었다·
가슴에 웅지는 있지만 스스로도 실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함소령이 그런 곽문정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시원하게 말했다·
“아 그럼 아직 초보구나?”
“그런 셈이지· 그래도 보표는 맞아·”
곽문정이 가슴을 탕탕 쳤다· 그에 함소령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중에 나도 보표가 필요할 때 백룡상단으로 가면 돼요?”
“그 그래!”
“헤헤! 분명 약속한 거예요?”
“응!”
곽문정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함소령이 다시 미소를 짓고는 주방으로 총총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곽문정의 얼굴이 온통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와우! 어린 꼬맹이가 보통 여우가 아니구나·”
“당돌하기도 하지· 요즘 애들은 다 저런가?”
철기당의 무인들이 한마디씩 떠들었다· 함소령의 당돌함에 모두가 혀를 내두른 것이다· 하지만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특히 채약란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함소령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자 식사나 하자·”
“네!”
진무원의 말에 곽문정이 젓가락을 들었다· 함소령의 호언처럼 돼지고기볶음은 무척 맛있었다· 이런 시골 객잔에서 이 정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
진무원과 곽문정이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사이 함소령은 철기당 무인들과 공동파 도사들의 식사를 주문 받고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곳에서 술 한잔하고 싶구나·”
곽문정이 입안에 돼지고기를 가득 넣은 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다른 탁자에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철기당의 무인들도 진무원처럼 맛깔스러운 음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호! 이 정도의 솜씨는 성도에서도 보기 힘든데·”
“그러게· 솜씨가 제법이네·”
그들은 내친김에 술도 시켜서 한 잔씩 마셨다·
진무원과 철기당 무인들이 그렇게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였다·
“여기 숙수가 누구냐?”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니 공동파 도사들이 젓가락을 내려놓는 모습이 보인다·
중년의 도사들 중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도사가 탁자를 쾅 치며 다시 한 번 창노한 음성을 토해냈다·
“숙수는 어서 나오지 못할까!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웅혼한지 실내의 기물들이 웅웅 떨렸다· 철기당의 무인들이 미간을 찌푸리고 내공이 약한 곽문정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잠시 후 함소령과 아비로 보이는 중년의 숙수가 급히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숙수가 물기 묻은 손을 앞치마로 닦다가 공동파의 도사들을 보고는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사 사형?”
“흥! 역시 함지평 네놈이었구나!”
“사형이 어떻게 여기에···?”
숙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중년의 도사가 차가운 시선으로 숙수를 노려보았다·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네놈이 이곳에서 숙수질을 하면서 살고 있다더니·”
“이제 전 공동파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형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숙수 함지평의 대답에 중년도사의 얼굴에 짙은 노기가 드리워졌다·
“그래 파문을 당했으니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치자· 하면 이것은 어이할 터이냐?”
중년도사가 옆에 있는 소년을 가리켰다· 그러자 소년이 손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가 뱉은 침 안에는 부러진 이 조각이 섞여 있었다·
“네놈이 만든 음식을 먹다가 설궁의 이가 부러졌다· 설궁은 일대제자지만 태사숙께서 친히 가르치기 위해 선택한 기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공동파의 미래란 말이다· 그런데 네놈이 만든 음식을 먹다가 이가 부러졌다· 네놈은 이 일을 어찌 책임질 생각이냐?”
“그런···?”
함지평이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남해객잔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은 그가 직접 선별한 신선한 재료로 만든다· 특히 음식을 만들기 전에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 결과 객잔을 연 지 일 년 만에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형편이다· 그런데 음식에 돌이 들어가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형·”
함지평이 슬픈 눈으로 중년도사를 노려봤다·
중년도사의 이름은 무해· 함지평과는 공동파에서 같이 수학한 사이다· 만일 무공을 잃고 파문을 당하지 않았으면 함지평도 무해처럼 공동파의 일대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날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겁니까? 그래서 이러는 겁니까?”
“나는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사형은 단지 자존심이 상했을 뿐이지만 저는 무공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겠습니까?”
“네놈 말은 내가 무슨 꼭 억하심정이 있어서 일부런 이런다는 것 같구나· 보거라 놈· 설궁의 이가 부러졌다· 이것이 진실이다·”
무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함지평을 바라보는 무해의 눈에 은은한 살기가 맺혔다·
십오 년 전 무해는 공동파에서 촉망받는 기재였다· 하지만 그 앞에 항상 먼저 자리한 이름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함지평이었다·
함지평에 밀려 무해는 항상 이인자에 불과했다· 주위의 기대도 선망 어린 시선도 모두 함지평의 몫이었다· 정작 함지평 자신은 그런 기대와 시선을 부담스러워했지만 말이다·
공동파에서는 삼 년마다 한 번씩 속가제자들과 후원자들을 모두 초청해 친선 비무대회를 열었다· 제자들의 기량을 점검하고 공동파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그날 우승을 차지한 기재에게는 공동파 최고의 기재를 의미하는 공동일수(崆峒一秀)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이 주어진다·
무해는 공동일수를 노렸고 결승에서 함지평과 격돌했다· 그리고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공동파의 수많은 제자가 보는 앞에서 당한 패배는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무해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무해는 다음에 다시 함지평에게 도전할 기회를 노렸지만 그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았다·
공동일수라는 칭호를 받은 지 몇 달 후 함지평은 불미스러운 일에 엮여 무공을 폐쇄당한 채 공동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했지만 공동파의 수뇌부는 굳게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함지평은 점점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갔다· 하지만 오직 한 명 무해만큼은 그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이렇게 평범한 숙수가 되어 살아가는 함지평을 찾아냈다·
설궁은 무해의 곁에서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돌아가는 사태를 지켜보았다· 설궁은 예전 함지평과 같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제자였다·
오죽했으면 이제 겨우 열다섯밖에 안 된 설궁이 일대제자로 발탁되고 공동파 최고의 검객이라는 태사숙 홍설진인(紅雪眞人)이 그를 친히 가르치겠다고 선언했을까·
아직 도명을 받지 못해 속세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그는 공동파가 자랑할 만한 기재가 분명했다·
‘후후! 재밌구나·’
설궁이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무해가 함지평에게 어떤 원한을 갖고 있는지 관심 없었다· 그가 필요한 것은 단지 무해의 지지뿐이었다·
설궁은 그냥 일대제자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의 목표는 매우 원대했다·
우선은 대사형 무진을 누르고 공동파의 장문인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발판으로 운중천의 차기 아홉 하늘이 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기반이 필요했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사형제들이 지지해 주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설궁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무해가 접근해 왔다·
이 조금 부스러지는 것으로 무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손해가 아니었다· 무해의 영향력은 일대제자 중에서도 상당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마음 편하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함지평의 시선이 무해를 향했다·
“정말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이가 부러진 것이냐?”
“보다시피 부러졌네요·”
설궁이 손바닥 위의 이빨 조각을 내밀었다· 그런 그의 태도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말이냐?”
“그럼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설궁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함지평이 한숨을 내쉬었다·
“공동파의 미래가 암울하구나· 태사숙께서 선택하신 기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짓을 일삼다니·”
“도저히 네놈의 오만을 용서할 수 없구나!”
분노한 무해가 노성과 함께 함지평의 가슴에 일격을 날렸다·
쾅!
함지평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훌훌 날려가 벽에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