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 8장 요검설화(妖劍雪花) (1)
백룡상단에는 자체 호상단이 존재한다· 외부 표국에 맡기기 힘든 고가의 물건들을 주로 운송하다 보니 백룡상단에서도 믿을 수 있는 보표(保票)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보표들은 대부분 백룡상단 내에 있는 숙소에서 머무는데 보통 육 인이 방 하나를 사용한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보표들끼리는 자연 유대감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유대감이 백룡상단의 호상단이 여타 상단의 호상단과 구별되는 점이었다·
보표들의 숙소에는 넓은 연무장이 딸려 있었다· 젊은 보표들은 연무장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고 경험이 많거나 나이가 많은 보표들은 연무장 한쪽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바둑을 두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표들의 숙소에 윤후명이 들어섰다·
“단주님·”
보표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공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사십 대 중반의 공진성은 신의가 두텁고 무공도 강해 보표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윤후명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지냈는가?”
“하하! 저희야 단주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그런데 어쩐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황 보표는 어디에 있는가?”
“형님이라면 저쪽 구석에서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있을 겁니다·”
“제자를 들였는가?”
“제자는요· 이번에 곽이수 그 친구의 아들이 들어왔잖습니까? 그 친구와의 옛 정분을 생각해서 심심파적으로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런가?”
윤후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제 십대 초중반의 소년이 땀을 흘리며 연무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사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장년이 앉아서 훈수를 두듯 말하고 있었다·
“거기서는 어깨에 힘을 더 줘야지! 내공의 흐름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외공과 일체화시키는 게 더 중요해! 이놈아 힘을 주라니까 그렇게 뻣뻣하게 하지 말고!”
장년인의 호통에 소년이 식은땀을 흘렸다· 어떻게든 열심히 해보려 하지만 그는 장년인의 가르침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재능이 형편없군·’
윤후명도 무공을 익힌 무인이다· 비록 그 성취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 보는 안목만큼은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윤후명이 보기에도 소년의 재능은 형편이 없었다·
이건 무공이라기보다는 숫제 술 취한 주정뱅이의 몸놀림이라고 보는 게 좋을 지경이었다·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윤후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장년인에게 다가갔다·
“황 보표·”
“어이쿠 단주님·”
황 보표라 불린 장년이 그제야 윤후명의 존재를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은 꾸부정한 허리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장년인은 바로 황철이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엔 어인 일이십니까?”
“어머님이 부르시오·”
“노마님이요?”
“그렇소· 바로 들어오라 하셨소·”
“아니 노마님이 어인 일로····”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소·”
“그럼 가야지요·”
대답을 한 황철이 소년을 보며 말했다·
“인석아 호상 행렬 따라갔다가 칼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쉬지 말고 연무해· 네놈은 어중간해서 딱 죽기 좋은 부류야·”
“에이! 진짜 악담을 하세요·”
“다 네놈을 위해 하는 말이야 이놈아·”
황철이 뒤돌아서자 소년이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자신도 황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이름은 곽문정· 이 년 전 호상 행렬에 따라갔다가 죽은 아비 곽이수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보표로 들어왔다· 보표를 하기엔 무공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아비의 공로를 인정한 백룡상단에서는 흔쾌히 그를 받아들였다·
황철과 곽이수는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다· 황철이 자리를 비웠을 때 곽이수가 호상을 나갔다가 비명횡사했다· 그 후 황철은 곽문정에게 틈틈이 무공을 가르쳤다·
황철은 윤후명에게 인사를 한 후 노태태의 거처로 향했다·
윤후명은 멀어지는 황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공이 그리 강한 것 같지도 않고 머리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은데 어머님은 저 사내의 무엇을 보고 중용한 것일까? 나는 보지 못한 어떤 장점을 어머님은 보신 것일까? 정말 어렵구나·’
옆에서 곽문정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윤후명은 그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노마님 저 황철입니다·”
“들어오세요·”
노태태의 허락이 떨어지자 황철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온 황철이 노태태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러자 노태태가 황철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황 보표·”
“감사합니다 노마님·”
황철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노태태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노마님 덕분에 분에 넘칠 정도로 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황 보표한테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일이 뭐 있다고····”
황철이 말끝을 흐렸다·
실제로 그는 단 한 번도 백룡상단에서 두각을 나타내 본 적이 없다· 그저 보표로서의 일상에 충실했을 뿐이다· 하지만 노태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근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이번에 셋째가 운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운남이라면?”
황철이 절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도 들려오는 풍문으로 운남의 사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부를 개척한 곳이니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으음!”
“그래서 황 보표가 따라가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는 황 보표를 믿습니다·”
노태태가 황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에 황철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노마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공도 그리 대단하지 않구요·”
노태태는 빙긋 웃기만 했다·
“휴우! 일단 제가 따라가기는 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 황 보표·”
“언제 출발하면 됩니까?”
“보름 후입니다·”
“그전에 돌아올 테니 잠시 말미를 주십시오· 다녀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러세요·”
“그럼····”
황철은 노태태한테 포권을 취해 보인 후 밖으로 나갔다·
노태태가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당신의 행운이 이번에도 내 아들을 지켜주길····”
칠 년 전 윤자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오 년 전 노태태가 생사의 위기에 빠졌을 때도 그 곁에는 황철이 있었다· 그 후로도 상단의 운명이 걸린 위기가 몇 차례 찾아왔다·
그때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위기를 헤쳐 나온 다음에 보면 그 자리에는 항상 황철이 있었다· 황철은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지만 노태태는 그것이 단순히 운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철에게는 위기를 헤쳐 나가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본인이 의도한 것이든 진정 우연에 의한 것이든 말이다·
노태태는 행운도 재능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런 재능을 타고난 자는 천하에 그리 흔치 않았다·
☆ ☆ ☆
황철은 곽문정에게 자신이 자리를 오래 비우게 되었으니 열심히 무공을 익히라는 당부하곤 거처로 돌아왔다·
방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궤짝을 열자 그동안 열심히 모아둔 전표가 보였다· 황철은 전표를 모두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재물당(財物黨)이었다· 재물당은 말 그대로 백룡상단에 들어오는 재물을 관리하는 곳이다·
“아니 이게 누군가? 황 보표 오랜만에 보는군·”
황철이 들어서자 재물당주 석중상이 반겼다· 석중상과 황철은 연배가 비슷해 간혹 술을 마시는 사이였다· 아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예 모르는 남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황철이 석중상에게 전표를 내밀었다· 그러자 석중상이 미간을 살포시 찌푸렸다·
“또인가?”
“저번처럼 챙겨주십시오·”
“허! 숨겨둔 자식이라도 있는 건가? 이건 뭐····”
일 년에 몇 차례 있는 행사이다· 황철은 보표로 일하며 애써 모은 돈을 재물당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으로 바꿨다· 쌀을 비롯한 각종 식량 옷과 철괴 같은 것으로 말이다·
그는 그렇게 마차 한가득 실은 물건을 가지고 어디론가 갔다 왔다· 목적지가 어딘지 누구에게 가져다주는 건지는 절대 말하지 않고 말이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한번 떠나면 근 열흘 이상 자리를 비우니 궁금증은 더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석중상도 술자리에서 넌지시 물어봤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석중상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시세보다 훨씬 싸게 각종 생필품을 넘겨주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재물당에서 하는 일이 그런 것이기에 문제될 일은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석중상이 전표를 세어보더니 이내 붓을 들어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는 수하에게 종이를 건네주면서 그 안에 적힌 것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이번에는 며칠이나 걸리는가?”
“늦어도 보름 안에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가? 그럼 그때 술이나 한잔하자구·”
“힘들 것 같습니다·”
“왜?”
“돌아오는 즉시 셋째공자님을 모시고 운남으로 가야 합니다·”
“자네까지 동행하는가?”
석중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윤자명이 운남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황철까지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꽤 오랫동안 못 보겠군·”
“돌아오는 대로 거하게 한잔하시죠· 그때는 제가 사겠습니다·”
“정말이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성격은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암! 내가 그래서 자네를 좋아하지· 자네가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겠네·”
석중상이 황철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에 황철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황철은 짐을 가득 실은 마차를 타고 백룡상단을 나왔다· 그가 탄 마차는 난주를 벗어나 북상하기 시작했다·
옥문관(玉門關)을 벗어나자 중원과는 전혀 다른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대로 서쪽으로 가면 신강이 나온다· 신강은 성도인 오로목제(烏魯木齊)만 발달했을 뿐 몇날 며칠을 가도 인적 하나 볼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중앙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변방이다 보니 신강은 법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대신 신강을 지배하는 것은 지역 군벌이나 토호들이었다· 하지만 워낙 대지가 광활하다 보니 군벌이나 토호들의 힘으로도 지배를 할 수 없는 곳이 존재했다·
그런 곳을 지날 때면 마적 떼를 조심해야 했다·
마적들은 군벌과 토호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상단이나 나그네들을 습격했다· 그들은 무척이나 잔인해서 절대로 상단이나 나그네들을 살려두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섯 패가 각자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비황대(飛荒隊)라는 마적 떼가 다른 마적들을 통합해 흡수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군벌이나 토호들도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별개의 패거리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하나로 뭉친 마적 떼라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황철은 아직까지 마적들에게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황철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다른 이들은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가도 습격을 당하는데 황철은 단 한 번도 마적들에게 물건을 빼앗겼다는 소문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일부러 황철을 기다려 같이 움직이는 이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황철은 거의 쉬는 법이 없었다· 마차를 끄는 말이 지치면 잠깐 쉴까 그 외는 마차에서 내리는 법이 없었다· 피로하면 운공을 하거나 고삐를 쥔 채 잠을 잤다· 식사도 간단한 건량으로 해결하니 굳이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를 보고 자취를 감춘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약탈을 하는 건지 마적 떼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황철은 북으로 북으로 움직였다· 기온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바람은 사나워졌다· 내공을 운용해도 견디기 쉽지 않은 추위가 느껴졌지만 황철은 춥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를 더 북쪽으로 올라가자 이번에는 끝없이 하얀 평원이 펼쳐졌다· 눈에 뒤덮여 있는 것이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에 말들도 한 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은지 연신 콧김을 내뿜었다·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그의 얼굴에도 기이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원 저 멀리 유독 하얀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하얀 바다에 떠 있는 무인도처럼 오롯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산의 모습에 황철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공자님·”
황철의 눈에 그리움의 빛이 일렁였다·
☆ ☆ ☆
휘잉!
골짜기 사이로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에 세상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두껍게 옷을 껴입어도 절로 고개가 움츠러드는 추위에 남자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가볍게 걷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듯 남자의 머리카락은 봉두난발이 된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옷도 다 찢어져 속살이 보이는 하의만 걸쳤을 뿐 상의는 아예 입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자는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허벅지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지만 남자가 지나간 자리엔 그저 희미한 발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남자가 눈길을 걸어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화로가 있었다· 화로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열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방원 십 장 안엔 눈이 쌓였다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남자와 화로와의 거리는 십여 장 그런데도 벌써 가공할 열기가 느껴졌다· 뜨거운 공기가 폐로 밀려들어 숨을 쉬기 힘들 지경이고 열기에 직접 노출된 안구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도 남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화로를 향해 다가갔다·
파지직!
화로 안에서는 순백에 가까운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고 불길의 중심에는 기다란 물체가 놓여 있었다· 엄청난 열기를 받은 물체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물체의 상태를 확인하던 남자가 화로 옆에 있는 강철 집게를 불속에 불쑥 집어넣었다· 남자는 기다란 물체를 꺼내 화로 근처에 있는 작업대에 놓았다·
집게에 들려 나온 물체는 바로 금속이었다· 마치 용암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기다란 금속은 가공할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놈 이제야 항복하는구나·”
남자의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드러난 입술이 미소를 지었다·
지루하도록 긴 싸움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이 년이나 걸렸다· 남자가 금속으로 검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 이 년 전이다·
그동안 수많은 검이 부서졌다· 그래서 남자는 더 단단한 검을 만들고자 마음먹었다· 그때 보인 것이 거처 한쪽에 처박혀 있는 검은 돌이었다· 운남의 한 부족이 신령스러운 돌로 떠받들던 물건이다·
너무나 단단하고 무거워서 쓸모가 없었지만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이기에 이제껏 가지고 있던 녀석이다·
그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놈으로 검을 만들면 어떨까?’
남자는 그 즉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했다· 제아무리 강한 금속일지라도 자신이 만든 화로의 불길이라면 쉽게 녹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쉽게 생각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강렬한 화로의 열기에도 검은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남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검은 돌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쯤 되자 남자도 오기가 생겼다· 남자는 지닌 지식을 총동원해 화로를 개조하고 열기를 높이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하였다·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난 후에야 남자는 화력을 높일 방법을 겨우 찾아냈다·
기존의 연료에 몇 가지 재료를 더 넣으니 화로의 열기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그제야 검은 돌도 조금씩 변화를 일으켰다·
그 후부터 남자의 싸움이 시작됐다· 남자는 검은 돌이 한껏 달아오르길 기다렸다가 망치질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는 그 지루한 작업이 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검은 돌은 매일 조금씩 변형을 일으켰고 이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남자가 원하는 형태로 변했다·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비록 손잡이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여인의 나체처럼 미끈한 선을 그리며 뻗어나간 모습은 검신이 분명했다·
남자는 이틀 전에 검신에 진흙을 골고루 발라 화로에 넣었다· 이 과정을 통해 금속의 재질이 바뀌면서 경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이제는 한껏 달아오른 검신을 미리 준비한 특별한 기름에 식힐 차례였다· 남자는 집게로 검신을 들어 기름통에 집어넣었다·
치이익!
순식간에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정확한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중요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넣어두어도 너무 빨리 꺼내도 안 됐다· 가장 적절한 시간이 되었을 때 꺼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 작업을 담금질이라고 하는데 검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이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손끝으로 검의 변화를 느끼고 기름이 튀는 소리로 시간을 재는 것이다·
‘바로 지금·’
남자가 기름 속에서 검을 꺼냈다·
남자는 꼼꼼히 검신을 살폈다· 진흙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남자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딱 자신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진흙에 둘러싸인 검신을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다· 이제 자연적으로 열기가 식기만을 기다리면 됐다· 그야말로 가장 힘든 고비를 넘긴 것이다·
검신의 열기가 식으면 진흙을 떼고 날을 세우는 작업만 하면 되었다· 날을 세우는 작업도 신경이 쓰이지만 지금까지 과정에 비하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다· 구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휴!”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공자님!”
갑자기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남자가 뒤돌아보니 장년인이 커다란 마차에 탄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황숙!”
“공자님!”
마차에서 내리는 장년인은 바로 황철이었다· 그리고 황철을 향해 다가가는 남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진무원이 황철을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황철이 눈시울을 붉혔다·
“공··· 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