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6장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 (5)
“으음!”
진무원이 신음성을 흘리며 눈을 떴다·
그의 몸은 폐허가 된 전각에 처박혀 있었다· 소금향이 그런 진무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진무원을 내려다보는 소금향의 눈에는 가공할 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무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된 게 요즘은 만나는 모든 이가 그를 보며 살기를 흘린다· 하도 살기에 노출되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소금향의 살기가 더욱 강해졌다·
“지금 네가 감히 나를 비웃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답하며 진무원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허가 된 북천문 어디에도 태무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흥! 그는 도주했다·”
소금향이 코웃음을 쳤다·
상대가 패퇴했다면 자부심이 담겨 있어야 할 텐데 그녀의 목소리엔 오히려 자존심이 상했다는 빛이 역력했다·
격돌의 순간 소금향의 월광륜은 태무강의 양어깨와 복부에 치명상을 입혔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아마 상처를 입는 그 순간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태무강은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그 상처를 입고도 도주했다· 소금향이 그런 태무강을 추적하려 했지만 내상을 적잖이 입은 데다 살아남은 회혼랑의 방해를 받았다·
회혼랑을 모두 죽였을 때는 태무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후환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하나 월광륜에 당한 이상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월광륜은 마병이다· 순수한 마기엔 순응하지만 태무강처럼 혼탁한 기운을 사용하는 자에겐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
‘거기다····’
소금향이 진무원을 내려다봤다·
자신과 싸우기 전에 태무강은 진무원에게 큰 상처를 입었다· 어떠한 상처라도 순식간에 회복하는 육체를 가진 태무강이다· 그런데 진무원에게 당한 상처만은 쉽게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 말은 곧 진무원의 내력이 태무강과 상극임을 뜻했다·
진무원과 월광륜에 치명상을 입은 이상 태무강의 죽음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낸 일이 아니기에 그리 자랑스럽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나 문제는 그런 자잘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북천문의 마지막 문주·
모두가 발톱 빠진 아기 호랑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진무원은 발톱이 빠진 것도 아기 호랑이도 아니었다· 치명적인 발톱을 감춘 대호였다· 태무강이 당한 상처가 그것을 증명했다·
‘무조건 죽여야 한다·’
후환이 될 싹은 일찌감치 제거해야 한다·
더구나 그녀의 후계자가 될 은한설이 마음을 준 것 같았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의 은혼심결은 오욕칠정을 끊을 때만 대성할 수 있기에·
소금향이 은혼심결을 끌어올렸다· 지금이라면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진무원을 죽일 수 있었다·
그때였다·
“안 돼요 사부님!”
은한설의 목소리가 소금향의 고막을 울렸다· 소금향은 그런 은한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손을 쓰려 했다· 그 순간 은한설의 조그만 몸이 소금향과 진무원 사이로 끼어들었다·
“너····”
자신의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주제에 은한설이 양팔을 벌려 진무원을 보호했다·
창백한 안색에 입술도 파리한 것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실제로 은한설은 청명구전환의 힘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선천지기까지 크게 상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초인적인 의지로 진무원을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소금향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감히 네가 나의 행사를 방해하겠다는 것이냐?”
“그게 아니에요 사부님·”
“한설 비켜라· 그는 우리와 불공대천지원수인 북천문의 후인이다·”
“하지만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해요·”
“너?”
소금향의 살기가 짙어졌다·
감히 제자가 사부의 결정에 반기를 들다니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예전의 은한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녀가 이렇게 변한 데는 진무원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감히 사부의 말을 무시하겠다는 뜻이더냐?”
소금향의 살기 어린 음성에 은한설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사부님·”
쿵! 쿵!
은한설의 이마가 터지며 피가 흘렀다· 그래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은한설의 필사적인 모습에 소금향이 혀를 찼다·
은한설의 상세는 위중했다· 당장 치료해야 했다· 그것도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은한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상태는 생각지도 않고 필사적으로 부탁하고 있다·
소금향은 그런 은한설의 모습에서 이제는 완전히 마모되었다고 생각한 기억의 조그만 편린 하나를 떠올렸다·
언제인지도 모를 아득한 옛날 그녀도 그렇게 무릎을 꿇은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묘하게 은한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감정이 이입됐다·
소금향이 진무원을 바라봤다·
은한설 못지않게 만신창이가 되었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오직 은한설만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소금향이 아니었다·
소금향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너의 부탁을 들어주마·”
“감사합니다 사부님·”
“대신 너에게 빙정은광대법(氷晶銀光大法)을 펼칠 것이다· 알겠느냐?”
“알··· 겠습니다·”
빙정은광대법을 받으면 은혼심결을 속성으로 완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준비할 것이 무척 많은데다 목숨을 잃을 위험이 너무 커서 소금향은 은한설에게 빙정은광대법을 펼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소금향이 뒷짐을 진 채 물러났다· 은한설에게 진무원과 작별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제야 은한설이 진무원을 바라봤다·
진무원은 폐허에 처박힌 모습 그대로였다· 마지막 한 모금의 진기까지 소모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무··· 원·”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네· 하··· 하!”
진무원이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애써 웃었다·
은한설이 갑자기 그의 목을 껴안았다·
그녀의 품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와 체향에 진무원을 눈을 감았다·
은한설이 속삭였다·
“나 이제 돌아가야 돼·”
“응·”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도 보내줘야 했다· 아직 그의 힘으로는 은한설을 보호할 수 없었다· 오늘도 은한설의 사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모두가 그가 약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꽉 쥔 주먹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의 떨림을 느낀 은한설이 말했다·
“자책하지 마· 어차피 언젠가는 돌아가야 했으니까·”
“다음엔··· 이다음엔 내가 찾아가마· 반드시!”
“응·”
은한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무원의 목에 둘렀던 손을 풀었다· 그녀가 소금향을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힘겹게 걸어갔다·
진무원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신기루처럼 그녀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문득 은한설이 뒤를 돌아봤다·
“무원 내가 어떻게 변해도··· 날 미워하면 안 돼·”
“절대로!”
“믿을게·”
희미한 웃음을 보이던 은한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사령이 그런 그녀를 들쳐 업었다·
소금향이 진무원을 노려봤다·
“경고하마 북천문의 마지막 후인이여· 절대 그 아이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거라· 절대 내 경고를 허투로 듣지 말거라·”
은한설은 진무원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날렸다· 사령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진무원은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진무원이 이를 악물었다·
“강해지겠다·”
반드시 강해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진무원의 가슴에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