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5장 하늘 위에도 하늘이 존재한다 (3)
쿠콰콰콰!
폭풍이 휘몰아쳤다·
북천문의 일각이 무너지고 마치 화산이라도 폭발한 것처럼 마당에 깊이 이 장 넓이 이십여 장의 거대한 구덩이가 패여 있다·
그 한가운데 태무강이 처참한 모습으로 처박혀 있었다·
고개는 모로 돌아가 있고 손은 도저히 꺾일 수 없는 각도로 구부러져 있었으며 정강이뼈가 살을 뚫고 툭 튀어나온 그의 모습은 도저히 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쿨럭!”
담수천이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해냈다·
무리하게 공력을 끌어올렸더니 기혈이 들끓고 심맥이 흔들리고 말았다· 관절이란 관절이 모조리 제멋대로 노는 것이 온몸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
“후우!”
한참을 기혈을 다스린 후에야 담수천은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 한 번의 격돌에 내공의 삼분지 이를 소모했다· 적잖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그는 살아남았다· 오직 살아남은 자만이 영광을 쟁취할 수 있었다·
후우웅!
그때였다·
갑작스레 기파가 요동쳤다·
‘설마?’
담수천이 느껴지는 기파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태무강이 처박힌 거대한 구덩이였다·
그그극!
기괴하게 꺾인 태무강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부러졌던 뼈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파열됐던 근육이 다시 아물고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담수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역시!’
회혼랑을 상대하던 은한설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질릴 정도로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마침내 상처를 모두 회복한 태무강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머리카락 사이로 혼탁한 그의 두 눈이 사이한 빛을 발했다·
“괴··· 물인가?”
담수천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침중하게 변했다·
인간이라면 그 정도의 상처를 입고 다시 움직일 수 없었다· 태무강이 입은 상처는 제아무리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절명할 수밖에 없는 엄중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담수천이 대지를 박찼다·
괴물이라도 상관없었다· 다시 한 번 쓰러뜨리면 그만이니까·
그의 주먹이 연이어 태무강을 향해 날아갔다·
삼연광륜격(三聯光輪擊)·
성광류에서도 강대한 위력을 자랑하는 초식이다· 세 번의 주먹질이 일점에 집중되면서 인체 내부를 붕괴시키는 극악의 수법이었다·
쾅!
첫 번째 주먹이 막혔다· 태무강의 몸에 어느새 일렁이는 회색의 강기가 막아낸 것이다·
담수천이 이를 악물며 두 번째 주먹을 날렸다·
콰앙!
하지만 두 번째 주먹질마저 막히고 말았다·
‘설마?’
처음으로 담수천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리고 태무강은 그의 세 번째 주먹질마저 막아냈다·
삼연광륜격이 모조리 막힌 것이다·
백인비무행의 마지막 상대인 추혼검객 백성원의 애검 단월(丹月)도 삼안광륜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만큼 극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삼안광륜격이 막힌 것은 담수천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태무강이 입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쾅!
굉음과 함께 바닥에 깊은 족적이 파이며 그의 몸이 담수천의 시야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어디냐?’
담수천이 성광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왼쪽에서 기파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담수천이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콰득!
담수천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태무강의 발뒤꿈치가 강타한 것이다· 담수천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내장이 진탕된 듯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지 않았다면 단순히 내상을 입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흐흐!”
태무강이 담수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웃고 있는 그 모습이 꼭 담수천을 비웃는 것 같았다· 담수천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감히!”
그는 천하의 정상에 서려는 남자였다·
타인을 내려다보는 것은 익숙했지만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은 익숙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있어 태무강의 내려다보는 시선과 조소는 굴욕적이었다·
담수천이 성광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꿀렁!
몸 안에서 느껴지는 한줄기 이질적 기운· 마치 혈도를 타고 바늘이 흘러 다니는 것처럼 온몸이 쿡쿡 쑤셔왔다·
‘침투경(浸透勁)?’
방금 전 격돌할 때 침투한 게 분명했다·
담수천이 내공을 한 바퀴 돌렸다· 이 정도의 기운을 몰아내는 것 정도는 단 호흡이면 충분했다·
“크윽!”
내공을 운용하던 담수천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핏줄이란 핏줄이 모조리 불거져 나왔다· 그가 크게 휘청거리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건?’
그제야 담수천은 깨달았다· 태무강이 자신의 몸에 심어놓은 기운이 일반적인 침투경이 아님을·
어둠의 창이 공격해 왔다· 철벽이라 생각한 성광기의 허점을 뚫고 음습한 기운이 파고들어 왔다· 담수천조차 생각지 못한 약점이었다·
완벽이라 생각하던 성광기에 이런 허점이 있는지 담수천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가하게 약점을 보완할 생각할 틈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음습한 기운은 미친 듯이 그의 내부를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이어 태무강의 폭풍 같은 공격이 들이닥쳤다·
쿠콰콰!
담수천의 몸이 폭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이리저리 튕겨나갔다· 내부의 공격에 담수천은 태무강의 공격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담 공자!”
“아우!”
서문혜령과 심원의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아는 가장 강한 남자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보다 못한 심원의가 상대하던 회혼랑을 내버려 두고 담수천을 돕기 위해 몸을 날렸다·
텅!
심원의의 성명절기인 홍옥마수(紅玉魔手)에 태무강이 튕겨져 나갔다· 심원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달아 홍옥마수의 절초를 펼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심원의도 담수천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몸에도 어느새 이질적인 기운이 침투한 것이다·
‘이럴 수가!’
원단심공(圓端心功)·
그가 익힌 내공 심법이다·
수백 년 동안 보완되고 발전해 온 이 신공은 강호에서 가장 완벽한 심법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었다· 특히 내공의 깊이와 단단함에서는 따라올 심공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심원의 역시 그런 원단심공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자부심은 산산이 깨지고 있었다·
태무강이 그의 몸에 심은 이질적인 기운인 원단심공을 공격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단순한 침투경이 아니다· 마치 처음부터 원단심공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취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온다·
‘몸 안에 침투한 기운이 바늘처럼 미세하게 나뉘어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 온다·’
투두둑!
완벽하던 원단심공의 내공에 균열이 생겼다· 굳건하던 방호벽이 깨지고 있었다·
심원의도 몰랐고 원단심공을 만든 조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쾅!
“크억!”
결국 내부의 공격에 신경이 분산된 심원의가 일격을 얻어맞고 저 멀리 튕겨나갔다·
옷은 찢어지고 영웅건이 찢겨져 나가 머리는 산발이 됐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선혈이 흥건했다·
심원의의 몸이 굴욕으로 푸들거렸다·
그가 언제 이런 치욕을 당해봤을 것인가?
“크아아! 제엔장!”
심원의가 두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괴성을 내질렀다·
“흐흐!”
태무강이 그런 심원의의 머리를 향해 통나무 같은 다리를 후려쳐 왔다·
맞으면 즉사였다·
담수천이 달려들어 심원의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후웅!
그들의 머리 위로 태무강의 다리가 무서운 기세로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이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문혜령과 심수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설마 두 사람이 합공을 하고도 태무강에게 밀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퍼억!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던 회혼랑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은한설의 솜씨였다·
그녀의 손에는 회혼랑의 피와 살점이 묻어 있었다· 회혼랑은 감히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문제는 회혼랑 따위가 아니었다·
은한설이 태무강을 바라보았다·
담수천과 심원의가 처참히 밀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어찌 버티고 있지만 무너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은한설은 그들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태무강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다·
그가 익힌 혼원염마공(混元閻魔功)은 마치 철을 갉아먹고 몸집을 불리는 불가사리처럼 상대의 내공을 잡아먹는다·
잡아먹은 내공을 순간적으로 갈가리 찢어발기고 해체해 약점을 분석해 내고 가장 상극의 기운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 정도가 되면 단순히 변화가 아니라 가히 진화의 수준이다· 그 어떤 신공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혼원염마공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야말로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괴공(怪功)이었다·
이쯤 되면 가히 무적의 무공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혼원염마공에도 한 가지 약점은 존재했다· 마구잡이로 상대의 내공을 흡수해 변환시키다 보니 결국에는 자신의 내공 자체가 더 이상 정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가 되면 태무강은 깊은 잠에 빠진다· 마치 먹이를 소화시키는 뱀처럼 동면을 하는 곰처럼·
태무강은 인간이 아니라 마물에 가까웠다·
그는 결코 자연 발생한 존재가 아니었다· 절대의 고수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앙(災殃) 같은 존재였다·
그토록 강대하던 사부도 태무강에게 당하고 말았다· 일격에 격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내공을 분석당해 역공을 당하고 만다·
태무강의 목표는 오직 단 한 명 은한설이었다·
그녀를 말살하기 전까지 태무강은 절대 쉬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태무강은 은한설에 대한 감시를 잠시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간간이 은한설과 마주치는 살기 어린 시선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태무강이 손가락을 들어 은한설을 가리켰다·
‘다음은 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