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4장 혼돈의 바람이 북쪽 하늘을 뒤덮으니······ (1)
“냄새가 여기까지 풍겨오는구나·”
“지미럴! 좋은 건 자기들끼리 다 먹는구만·”
북천문 외곽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외당 삼조의 남월과 이춘명이 투덜거렸다·
아침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당연히 자신들도 휘영전에 초대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갖 산해진미를 맛볼 거라 생각해 전날부터 쫄쫄 굶은 외당 삼조였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하던 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전호대주 목운평은 그들에게 북천문 외곽의 경계를 서게 했다· 장패산은 그에 끽소리 못하고 부하들과 함께 북천문을 나와야 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북천문 외곽 곳곳에 외당 삼조가 흩어져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경계는 뒷전으로 미루고 잡담이나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쩡거리지 않는 곳에서 경계나 서라니 차라리 무공이나 익히라고 하지·”
“그러게 말이야· 차라리 이 시간에 혈파도법이나 익히는 게 훨씬 더 나을 텐데·”
그들은 장패산에게 넘겨받은 혈파도법에 빠져 있었다·
생전 처음 접하는 상승의 무리와 가공할 위력의 도법은 그들도 강해질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했다·
“진짜 배고파 죽겠네· 대체 언제까지 경계를 서라는 거야?”
“그래도 우리 몫은 남겨놓겠지? 음식들 보니 장난이 아니던데·”
“씨발!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네· 안 되겠다· 이거라도 마셔야지·”
이춘명이 허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가 꺼낸 물건을 확인하는 순간 남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건 술 아니야? 어디서 난 거야?”
“흐흐! 하인들이 가져온 걸 하나 쓱싹했지·”
“들키면 어쩌려구?”
“괜찮아· 어차피 한 병 정도 빼돌려서는 표도 나지 않으니까· 마실 거야 말 거야? 안 마시면 나 혼자 마시고·”
“어허! 사람 하고는· 누가 안 마신대? 다만 이곳에선 곤란하단 거지· 사방이 트였잖아·”
남월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이춘명이 히죽 웃었다·
“잠깐만 자리를 비우면 되지·”
그러면서 근처에 있는 가시덤불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남월도 이춘명처럼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얼른 가서 한 잔만 하고 오자구·”
둘은 시시덕거리며 가시덤불 뒤로 들어갔다·
“캬! 끝내주는구나·”
먼저 한 모금을 마신 이춘명이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남월에게 술병을 넘겨주었다·
“허! 명줄세 명주야·”
남월도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가를 닦았다·
이춘명이 빼돌린 술은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잘 숙성된 소홍주였다· 주로 절강성 소홍에서 생산된다 하여서 이름이 소홍주였는데 중원에서 알아주는 명주 중 하나였다·
중원에 있을 때도 마셔보지 못한 고급술을 마시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왔다·
“흐흐!”
두 사람이 바보처럼 웃음을 흘렸다·
안주가 없어도 좋았다· 이렇게 술만 마실 수 있다면·
이제 얼마 후 심원의를 따라 중원으로 들어가면 더욱 맛있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때까지만 조금 더 참으면 돼·”
“중원으로 돌아가면 열흘 밤낮을 기루에서 지내자구·”
“아무렴! 계집 살 냄새도 실컷 맡고 술도 진탕 마시며 보내자구·”
“흐흐흐!”
상상만 해도 좋은지 그들은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그때였다·
“그 술 나도 좀 마실 수 있나?”
갑자기 그들 등 뒤에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마치 동굴 안에서 메아리치는 소리처럼 음산하면서도 강한 울림을 가지고 있는 음성이었다·
“헉!”
“누구냐?”
놀란 두 사람이 후다닥 일어나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회색의 장포를 입은 거한이 보였다· 봉두난발 사이로 보이는 광기 어린 붉은 눈동자에 두 사람은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거한이 손을 내밀자 이춘명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들고 있던 술병을 건넸다·
“벌컥벌컥!”
거한이 이춘명으로부터 넘겨받은 술을 단숨에 비웠다· 그가 소매로 입가에 묻은 술을 닦으며 말했다·
“좋은 술이군·”
거한의 미소에 두 사람의 몸이 얼어붙었다·
덜덜덜!
그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바지가 축축이 젖어들어 갔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몸은 구멍이란 구멍을 모조리 열어 안에 쌓아둔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한다·
지금 두 사람처럼·
“응?”
소무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시오 형님?”
함께 경계를 서던 원적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무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경이 바짝 곤두선 느낌 이상하게 피부에 소름이 올라왔다·
“형님?”
원적심이 다시 한 번 부르고 나서야 소무상이 그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상해·”
“뭐가 말이오?”
소무상이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두근거리는 가슴이 쉬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소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원적심도 일어났다·
“다른 놈들한테 연락해 봐·”
“형님?”
“빨리·”
“아 진짜····”
원적심이 투덜거리면서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대답이라도 하듯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끼리의 약속된 신호였다·
“북서쪽에 누가 있지?”
그쪽에서만 답신이 오지 않았다·
“그쪽이라면 춘명이하고 남월이 있을 거요· 춘명이가 술병을 챙기는 걸 내가 봤소· 아마 술 마시느라 회신을 안 한 걸 거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상하게 불안했다·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그의 신경을 건들고 있었다· 마치 바늘로 뇌리를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그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소무상이 녹슨 철검을 집어 들었다·
엽월과의 싸움에서 검을 잃은 소무상이다· 그 후 제대로 된 검을 구할 수 없어 싸구려 철검을 구해 사용하고 있었다·
“형님?”
원적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무상이 이렇게 나올 때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심지어는 조장인 장패산도 말이다·
소무상이 뛰자 덩달아 원적심도 그 뒤를 따랐다·
‘젠장! 짝 잘못 만나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원적심이 투덜거렸다·
소무상은 경공을 펼쳤다·
바닥을 박찰 때마다 그의 몸이 삼 장씩 앞으로 나갔다· 원적심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소무상의 뒷모습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야? 그새 무공이 늘기라도 한 건가?”
혈파도법도 익히지 않은 소무상의 경공술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니 원적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적심은 있는 내공 없는 내공 모두 짜내어 소무상의 뒤를 따랐다· 그제야 저 멀리 소무상의 모습이 보였다· 겨우 소무상이 있는 곳에 도착한 원적심이 벌컥 화를 냈다·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지면 어떡합니까?”
“····”
“형님?”
그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원적심이 소무상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순간 원적심의 눈이 찢어질듯 크게 떠졌다·
“이 이건?”
갑자기 속에서 욕지기가 치솟아 올랐다·
“우웨엑!”
결국 원적심은 고개를 돌리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냈다· 그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춘명 남··· 월·”
소무상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이춘명과 남월의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백정이 해체한 소 돼지의 사체도 이보다 잔인하지는 않으리라· 갈가리 찢기고 흩어진 육편만이 이곳에 인간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침··· 입자다·”
곰보다 흉포하고 호랑이보다 잔인한 자다·
평범한 정신을 가진 자가 이런 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소무상이 북천문을 뒤돌아봤다·
놈이 북천문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라· 나는 놈을 쫓겠다·”
“형님?”
“어서!”
소무상이 북천문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