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1장 용과 호랑이가 한 곳에 모이니······ (3)
담수천이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꽃같다면 진무원은 물과 같았다· 비록 담수천처럼 강렬한 기세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 모든 기파를 자신의 온몸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담수천이 진무원을 향해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쐐애액!
갑자기 공간을 가르며 격렬한 기운이 담수천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쿠와아앙!
굉음과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며 사방으로 일진광풍이 휘몰아쳤다· 몰아치는 거친 바람에 진무원은 손으로 눈을 가리며 주춤 뒤로 물러났다·
“놈! 이제야 따라잡았구나·”
먼지구름이 흩어지며 나타난 피처럼 붉디붉은 죽립을 눌러쓴 세 명의 혈포인· 그들은 마치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기파를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마찬가지로 피처럼 붉은 혈검이 들려 있었는데 어찌나 날이 예리한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진무원에게까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진무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 정도로 강렬한 특징이 있는 무인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비록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북방에 있지만 황숙이 한 번씩 들를 때마다 당금 강호를 질타하는 무인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기 때문이다·
‘누군가 저들은·’
그때였다·
자욱이 일어났던 먼지구름을 헤치며 담수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토록 강한 기운에 직격을 당했지만 담수천은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담수천의 눈에서 벼락같은 광망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감히 말도 없이 공격하다니!”
그의 노호성에도 혈포인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예리한 살기를 흘렸다·
“은염귀를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는가?”
“은염귀?”
담수천의 눈에서 광망이 일렁였다·
그제야 이곳으로 넘어오는 첫 관문에서 다짜고짜 자신을 공격하던 낯선 무인들이 떠올랐다·
“은염귀 은귀대·”
“이제야 기억이 난 모양이군·”
“그래· 이곳에 오는 내내 의문이 들었지·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그곳을 막고 있었던 것인지·”
그가 상대한 은염귀와 은귀대는 분명 범상치 않은 상대였다· 무엇보다 중원에 그와 같은 무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가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항상 강호의 모든 일에 이목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은염귀와 은귀대의 무공은 강호의 다른 무공들과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상리에서 철저히 벗어난 그들의 무공은 담수천에게도 많은 의문을 안겨주었다·
담수천이 혈포인들을 바라보았다· 죽립에 가려져 있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들이 일반적인 무인은 아니란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내 정체도 모른 채 날 쫓았던 것인가?”
담수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담수천은 은염귀와 은귀대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새로이 나타난 혈포인들도 담수천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했다· 단지 은염귀와 은귀대가 죽었기에 이곳까지 추적해 온 것뿐이다·
이른바 변수의 등장이었다·
혈포인들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북천문과는 무슨 관곈가?”
“북천문? 오래전부터 동경하던 곳이지·”
“관계가 없다는 뜻인가?”
“아직까지는· 그러는 당신들은?”
“····”
“불공평하군· 나는 이야기를 했는데 당신들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다니·”
순간 혈포인들의 살기가 증폭되면서 혈포가 부풀어 올랐다·
“문답무용(問答無用)이란 말이군·”
담수천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혈포인들의 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은귀대와 격돌할 때도 느꼈지만 이들의 무공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날카로운 기파는 결코 단 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체계적인 지원 아래 오랜 세월 고련을 해야만 겨우 그런 무위를 소유할 수 있었다·
담수천이 알고 있는 한 그게 가능한 단체는 중원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중원의 문파 중에서 이런 이들을 키워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이들은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단체나 문파와도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담수천은 이 이상 편하게 사고를 할 수 없었다· 혈포인들이 그를 향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혈검이 허공을 갈랐다·
쉬아악!
바람이 먼저 담수천을 향해 날아왔다· 검풍이었다· 그러나 진정 무서운 것은 검풍이 아니었다· 검풍 뒤에 숨어 다가오는 날카로운 검기였다·
그들의 검처럼 붉디붉은 검기였다· 붉은 검기의 해일에 갇힌 담수천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난도질될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때까지도 담수천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목숨을 포기한 것인가?’
진무원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감각에 어마어마한 내공의 유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담수천이 있었다·
푸화학!
순간 보는 이의 눈을 멀어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빛이 담수천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그 강렬한 빛에 진무원은 물론이고 혈포인들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쾅!
“커억!”
이어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와 누군가의 답답한 신음성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진무원이 눈을 뜨자 혈포인 중 한 명이 허공으로 훌훌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의 가슴은 움푹 함몰되어 있었다·
담수천의 주먹이 작렬한 것이다·
“막내야!”
순식간에 동료를 잃은 혈포인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담수천은 찰나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마치 거센 폭풍처럼 그의 몸이 남은 혈포인들을 향해 몰아쳤다·
쿠콰콰!
담수천의 몸이 닿기도 전에 엄청난 기파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모든 것을 파괴할 것 같은 거센 기파 속에서 혈포인들의 검이 붉은 검기를 줄기줄기 토해냈다·
“챠핫! 혈류만적파(血流萬適破)!”
붉은 검기가 비처럼 담수천을 향해 쏟아졌다·
이대로 공격한다면 혈포인들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만 담수천 자신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물러서서 다음 기회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담수천은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
쿠와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그대로 혈포인들을 직격했다·
진무원은 그 순간 똑똑히 보았다· 두 개의 혈구가 탄환처럼 튕겨져 나가는 모습을·
방금 전까지 무시무시하던 검기를 토해내던 혈포인들은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짓이겨진 채 십여 장 밖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살아 있는 자의 생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담수천과 격돌한 그 순간 이미 절명한 것이다·
진무원은 담수천을 바라보았다·
담수천이라고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옆구리와 등에 붉은 혈검이 꽂힌 채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베이고 뼈를 취했다·
말은 쉽지만 누구도 함부로 시도하지 못하는 일이다· 한순간에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후우 후우!”
그 상태로 담수천이 고개를 들어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온통 피로 물들었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개가 늦었구려· 내 이름은 담수천이오·”
“진무원입니다·”
훗날 창천무제(蒼天武帝)와 북검(北劍)이라 불리게 되는 두 남자의 첫 만남은 그렇게 누군가의 주검을 밟고 이뤄졌다·
☆ ☆ ☆
“아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담 공자님·”
담수천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북천문으로 들어오자 심원의와 서문혜령 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담수천은 그들의 호들갑에 신경 쓰지 않고 진무원을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불청객을 선뜻 받아준 것에 감사하오·”
“뭐 북천문은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니 신경 쓰지 말고 지내십시오· 그럼 편히 쉬시길·”
진무원은 담수천에게 포권을 취해 보인 후 전각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담수천이 그런 진무원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와! 오라버니 드디어 도착하셨군요·”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심수아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우기 전까지·
심수아가 담수천의 손을 마주 잡으며 반기자 서문혜령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온 진무원은 문득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식은땀이 촉촉이 맺혀 있다·
“담수천·”
그런 남자가 존재할 줄은 정말 몰랐다·
마치 폭발하는 활화산 같은 박력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거는 것도 망설이지 않을 만큼의 담대함을 한 몸에 지녔다·
찰나의 순간에 오히려 빛을 발하는 그 번뜩임과 냉철한 판단력은 단순히 천재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에 대한 모독 같았다·
“타고난 승부사·”
진무원의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다·
그가 담수천이 있는 화천각을 뒤돌아봤다· 화천각에 잠룡이 웅크리고 있는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같은 시대에 나타난 또 한 명의 젊은 무인이 그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