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7장 봄이 와도 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2)
진무원은 오늘도 망치를 들었다·
땅 땅!
그가 망치질을 할 때마다 사방으로 불똥이 튀면서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가 조금씩 형태를 찾아갔다·
지독한 열기에 진무원의 전신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한겨울에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지만 봄이 오고 기운이 오니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그래도 진무원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망치질을 했다·
이렇게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망치로 두들기는 작업을 단조라고 한다· 단조 작업을 통해 쇳덩이 내부의 불순물이 외부로 배출되면서 한결 단단하면서 오밀조밀한 조직을 갖게 된다·
단조 작업 시 침탄제로 소나무 숯 분말과 짚을 태운 분말을 사용한다· 곱게 간 가루를 표면에 발라 화로 내에서 뜨겁게 달궜다가 열기를 식힐 때 황토와 백토 볏짚 태운 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쇳덩이에 뿌려준다·
일련의 작업을 끝낸 후 다시 쇳덩이를 화로에 뜨겁게 달궈 망치질을 한다· 내부의 불순물이 망치질에 어느 정도 배출되면 도끼로 쇳덩이 가운데를 찍은 다음 접는다· 그리고 다시 망치질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접쇠라고 한다·
천병진서에는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려면 단조와 접쇠를 최소 열두 차례 이상 반복하라고 쓰여 있었다· 단조와 접쇠를 열두 차례를 반복하면 단순한 덩어리에 불과하던 쇠가 사천구십육 겹의 얇은 철판이 겹친 구조를 갖게 된다·
열두 차례의 단조와 접쇠를 반복하면서 불순물은 모두 빠져나가 쇳덩이의 무게 또한 오분의 일로 줄어들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한 자루의 검을 만들 준비가 끝나는 셈이다·
이때부터는 쇳덩이를 길게 늘려 검의 형태를 잡아야 했다· 화로에 쇳덩이를 집어넣어 골고루 달군 후 망치질을 한다·
땅땅!
진무원이 망치질을 할 때마다 붉게 달궈진 쇳덩이가 점차 검의 형태를 갖춰갔다· 망치질을 하는 진무원의 손놀림에는 거침이 없었다· 불똥이 사방으로 튀고 뜨거운 열기에 얼굴과 피부가 익었지만 그는 결코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츠츠!
언제부턴가 진무원의 몸에서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검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진무원은 자연스럽게 만영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화로의 열기와 싸우고 중화시키면서 그림자 내공은 자연스럽게 덩치를 불려갔다·
망치질을 하면서 진무원은 자연스럽게 최적의 힘을 낼 수 있는 박자와 그림자 내공의 운용을 익히고 있었다·
볼품없던 쇳덩이가 이제는 완벽한 검의 형태를 갖췄다· 하지만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작업이 남아 있었다·
진무원은 검을 다시 화로에 집어넣었다· 이때 화로의 온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온도를 낮춘 화로에 집어넣은 칼을 상온에서 자연스럽게 식히는 작업을 세 차례 반복했다·
이것을 풀림 작업이라고 하는데 단조와 접쇠 작업 때문에 충격을 받은 내부의 조직을 안정시키고 결정 구조가 고르게 정렬이 된다·
“휴!”
진무원은 수일간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검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작업인 담금질과 날 세우기가 남았다·
진무원은 미리 준비한 진흙을 어렵게 만든 검에 덕지덕지 발랐다· 검날에는 진흙을 얇게 바르고 검신에는 두껍게 발라 꼬박 하루를 건조시켰다·
진무원은 진흙이 잘 건조된 검을 화로에 집어넣었다· 초 한 자루가 탈 시간이 지나자 검날이 맑은 붉은색으로 가열되었다· 진무원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을 꺼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에 집어넣었다·
치이익!
순식간에 물이 달아오르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진무원은 재빨리 검을 물에서 꺼냈다·
진흙을 얇게 바른 검날 부분은 빨리 식으면서 경도가 매우 강해졌고 반대로 두껍게 바른 검신 부분은 천천히 식으면서 약간은 무르게 변했다·
이렇게 차등적으로 열처리를 해야만 검신에서 받는 충격을 최대한 분산시켜 검날이 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진무원은 눈을 감고 만영결을 운용하면서 검이 식기를 기다렸다·
아랫배에 자리를 잡은 그림자 내공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그의 혈도를 타고 전신을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만들기가 힘이 들어서 그렇지 일단 형성이 된 후 그림자 내공은 무서운 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었다·
그림자 내공은 은밀하면서도 음습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물먹은 솜처럼 다른 기운에 서서히 스며든 후 자신과 같은 형태로 변환시킨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오염이고 이쪽에서 보자면 흡수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진무원의 그림자 내공은 흡수한 열기에 파고들어 자신과 같은 성질로 만들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진무원의 내공은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외적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무공이 극에 달한 인물일지라도 진무원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서는 절대로 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대주천을 마친 후 진무원이 눈을 떴다· 순간 강렬한 안광이 폭사되어 나왔다가 서서히 사그라지며 본래의 평범한 눈빛을 되찾았다·
진무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완전히 식은 검을 들었다· 아직 날을 세우는 등 몇 가지 작업이 더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거의 완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진무원은 아직도 검신에 붙어 있는 진흙을 떼어냈다· 그러자 은색으로 빛나는 매끈한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처럼 은색으로 빛나는 몸체는 미세한 흠집 하나 없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진무원은 잠시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다가 손가락으로 검신을 튕겼다·
타앙!
맑은 쇳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지만 진무원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몇 번을 더 튕겨보던 진무원이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휴!”
한숨을 내쉬던 진무원이 문득 검지를 들어 자신이 완성한 검의 한 부분을 쿡 짚었다·
쩌엉!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검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진무원은 비산하는 쇳조각을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또 실팬가?”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완벽했지만 실패작이었다· 진무원의 눈에는 완벽함 뒤에 가려진 결점이 보였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아주 미세한 흠이지만 진무원은 그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검을 만들기 위해 직접 쇠와 불을 다루면서 진무원은 쇠의 결을 보게 되었다· 완벽한 결을 이룬 쇠는 아름답고 완벽하지만 그렇지 못한 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벽력탄 같은 불완전함을 담고 있었다·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힘으로 결에 충격을 준다면 이렇게 부서지고 만다· 그것이 진무원이 너무나 쉽게 검을 부술 수 있던 이유였다·
우연히 얻은 조그만 깨달음에 진무원은 쇄병지(碎兵指)라는 이름을 붙였다·
쇄병지를 얻었지만 진무원의 얼굴은 전혀 펴지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검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지 쇄병지 같은 괴공(怪功)을 익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무원은 검편을 모아 화로에 집어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거처로 돌아와 간단히 씻은 진무원은 문득 은한설이 보이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챙겨 먹으라고 미리 만들어둔 음식에는 숟가락을 든 흔적조차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밥을 해 먹었을 리는 없을 테니 필시 굶었겠군·”
진무원이 고개를 저었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다 보니 이제는 은한설의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도 모두 알게 됐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손으로 음식을 해 먹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소질도 없었다·
소질이나 재능이 없는 일에 시간을 소모하는 것을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는 실용성을 추구했다· 아마 진무원이 검을 만드느라고 두문불출하는 동안 그녀는 굶으면서 무공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애도 아니고····”
진무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처 한쪽에 있는 창고 문을 열었다· 얼마 전 황철이 다녀간 덕에 식량 창고가 가득 차 있었다· 진무원은 창고에서 몇 가지 재료를 꺼내 음식을 만들었다·
밥을 만들고 반찬과 화과를 만든 후 진무원은 밖으로 나왔다· 은한설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진무원은 연무장을 가로질러 은한설의 거처로 향했다· 은한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각 위 지붕 위에 은한설이 우두커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뭐 해?”
진무원이 불렀지만 은한설은 대답 없이 남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진무원이 낑낑 거리며 지붕 위로 올라왔다· 그래도 은한설은 대답이 없었다· 진무원이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봤다·
“도대체 무엇을····”
진무원이 입을 다물었다·
남쪽에서 먼지바람이 일으키며 일단의 무리가 호위하고 있는 마차가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음!”
진무원의 얼굴이 더할 수 없이 차갑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