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6장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걷는다 (1)
언제부턴가 만영탑에서는 메마른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쇳소리는 만영탑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석벽에 메아리치다가 사라졌다·
만영탑 사 층 완벽한 밀폐된 그곳에서 진무원이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옷을 벗은 상체는 온통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는데 구석에 있는 화로의 불빛을 받아 더욱 생동감 있게 빛나고 있었다·
깡깡!
진무원은 쇠 집게로 잡은 쇳덩이를 향해 망치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한 번씩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가 조금씩 길게 늘어나고 있었다·
진무원이 쇳덩이를 한참을 두드리다가 열기가 식자 다시 화로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쇳덩이가 붉게 달아올랐다· 진무원은 달아오른 쇳덩이에 다시 망치질을 가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쇳소리가 석벽에 부딪쳐 난반사되었다· 그래도 진무원은 묵묵히 쇠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렇게 해서 만든 최종적인 결과물은 바로 검이었다·
이 척 칠 촌의 길이에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검의 모습은 예전에 그가 깎은 목검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황철에게 이야기해서 진검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진무원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검을 만들어봄으로써 검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무원은 검을 단순한 살상 무기로 생각하지 않았다· 검이란 무인과 함께 호흡하는 친구이자 수족과 같은 존재였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보지 않고서는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무원은 직접 검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진무원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천병진서(千兵眞書)라는 기서 때문이었다· 천병진서는 임연수라는 당대 제일의 대장장이가 백여 년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기서였다· 황철이 우연한 기회에 천병진서를 얻었고 그것을 다시 진무원에게 건네줬다·
천병진서는 쇠를 다루는 방법과 함께 각종 무기를 만드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는데 임연수는 천병진서에서 진정한 명기는 주인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주인이 직접 만드는 것이라 했다·
북천문에는 버려진 공방이 있었다· 북천문이 전성기를 누릴 당시 무기를 만들고 수리하던 곳으로 지금은 오직 화로만 남은 상태였다·
진무원은 화로를 해체해 만영탑으로 옮겼다· 그러자 장패산이 제일 먼저 의심의 시선을 보내왔다·
“네놈 무슨 속셈이냐?”
“언제까지 황숙이 보내주는 돈으로 살 수 없으니 이제부터 슬슬 미래를 준비하려 하오·”
“미래?”
“나도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살아야지 않겠소· 그래서 이제부터 대장장이질이라도 배워서 먹고살려 하오·”
“흠!”
진무원의 대답에 장패산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는 것도 아니고 야장술을 익히겠다는 말에 딱히 반박할 건더기도 찾기 힘들었다·
솔직히 비웃음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천하의 북천문의 후예가 먹고살기 위해 야장술을 익히다니 이거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구나· 흐흐흐!’
그는 전설의 몰락을 조금 더 느긋하게 지켜보며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장패산의 의심을 넘겼지만 남은 난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가장 중요한 철괴는 황철이 구해다 줬다· 그러나 화로를 지필 원료를 구하는 것은 고스란히 진무원의 몫이었다· 진무원은 직접 지게와 도끼를 짊어지고 나가 참나무와 소나무를 베어와 숯으로 만들었다·
장패산과 부하들은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진무원을 보며 마음껏 비웃었다· 그러나 진무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모든 작업을 묵묵히 행했다·
그는 제일 먼저 작업에 쓸 망치와 집게 등의 각종 도구를 만든 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참숯과 소나무 숯을 태우며 화력을 높이고 철괴를 달궈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천병진서를 모두 외운 진무원이었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생전 처음 하는 망치질에 상처도 많이 입었고 쇳물이 튀어 화상을 입기도 했다· 처음 며칠간은 계속된 망치질에 손바닥이 아려 젓가락질조차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진무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진무원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을 꼽았다· 더디고 느리게 갈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의 인내심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수없이 손바닥이 까지고 굳은살이 박이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 망치질을 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진무원은 원하는 모양으로 쇠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진정한 장인의 솜씨와는 거리가 멀었다·
진무원은 자신이 만든 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담금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기포 자국이 검의 표면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형태도 일정하지 않아 검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했다·
진무원은 근처에 있던 큰 망치를 들어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까앙!
경쾌한 쇳소리와 함께 애써 만든 검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진무원은 미련 없이 동강이 난 쇳조각을 한쪽에 집어 던졌다·
“휴!”
진무원이 한숨 소리와 함께 근처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지난 며칠간의 노고가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자연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성장이 더딜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래도 손재주가 있는 편이니 조금만 노력하다 보면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오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진무원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고된 작업에 온통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보기 흉하게 박혀 있다· 강렬한 열기에 노출되다 보니 보기 흉하게 타고 곳곳에 허물이 벗겨진 것이 보였다· 그래도 진무원은 자신이 헛된 노력을 했다 생각하지 않았다·
‘더디지만 분명 나는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조금만 더 힘내자 진무원·’
진무원은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만영탑을 올라 가장 상층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쉴 틈도 없이 그대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밥을 짓고 양고기로 만든 화과가 익어갈 때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어와 자리에 앉는 이는 바로 은한설이었다· 은한설이 말없이 자리에 앉자 진무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밥과 수저를 건네주었다·
“오늘도 양고기네·”
“아아 그 이상은····”
“알아· 사치라고·”
“에?”
“하지만 지겨워·”
은한설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쩔 수가 없잖아· 남은 게 그거밖에 없으니· 조금 있으면 봄이니까 기다려 봐· 그때 맛있는 것 실컷 해줄 테니까·”
진무원의 대답에 은한설이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수저를 뜨기 시작했다· 그런 은한설의 모습을 보면서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지난 석 달 동안 은한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곳을 찾아왔다· 진무원도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내줬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꽤나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진무원은 알고 있었다· 여전히 은한설이 쌓은 높은 담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실제로 그녀는 진무원에게 자신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무원 역시 물어보지 않았고·
그렇게 묘한 관계로 두 사람은 지난 석 달을 보냈다· 그래도 매일같이 보다 보니 서로에게 꽤나 익숙해진 것이 사실이다·
진무원은 식사를 하는 은한설을 빤히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훨씬 혈색이 좋아 보였다· 지난 석 달 동안 먹은 양고기 화과가 질리는지 약간 인상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제법 잘 먹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양고기로 만든 화과는 이제 질리는군·’
이제 겨울도 막바지였다· 봄이 오면 황철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텅 빈 창고도 다시 찰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은한설이 있다면 말이다·
진무원은 은한설이 그리 오래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은한설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이 한 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주변 풍경과 동화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은할설은 여전히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동화되길 거부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문득 은한설이 고개를 들어 진무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아직도 검 만들어?”
“응·”
“할 만해?”
“힘들어· 죽을 거 같아·”
진무원은 솔직히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상하게 은한설을 보면 마음이 편해서 잘 드러내지 않는 속내까지 털어놓게 되었다·
“그런데 뭐 하러 그렇게 반복해?”
“글쎄 그냥 고집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그간의 노력이 아깝잖아·”
“똥고집!”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쁘지 않아·”
“뭐가?”
“그런 게 있어·”
“차는?”
“마실 거야·”
“조금만 기다려·”
진무원이 미소를 머금은 채 일어났다· 은한설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진무원이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난 석 달 동안 진무원은 매일같이 식사 후 차를 우렸다· 진무원이 끓이는 차는 무척 맛있어서 은한설은 이 시간을 무척 기다렸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진무원이 두 잔의 차를 우렸다·
“마셔·”
“응·”
투박한 질그릇을 입가로 가져가는 은한설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이번에는 진무원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냥 평소와 좀 다른 것 같아서·”
“그런 거 없어·”
은한설은 질그릇에 담긴 차를 모두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거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문득 그녀가 뒤돌아봤다·
“다음에 봐·”
진무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